오십에도 네 멋대로 살아라

by문이


나는 오랫동안 정신이 육체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강한 정신력이 몸을 움직이고, 의지만 있다면 웬만한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 그 믿음에 의심이 생겼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공부하다 꾸벅꾸벅 조는 아이에게 정신 차리고 버티라고 하지 않는다. 차라리 10분 정도 자라고 한다. 아니면 자리에서 일어나 PT 체조를 스무 번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고, 물을 마신 뒤 다시 공부하게 한다. 졸린 몸을 그대로 두고 정신만 깨우려 한들 아무 효과가 없다는 걸 경험상 알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면 예민해지고, 잠을 못 자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몸이 아프면 평소 아무렇지 않게 넘기던 일도 견디기 어렵다. 반대로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고 나면 복잡했던 생각이 가벼워지기도 한다.

나는 유전적인 심장 질환이 있어 달리기는 내게 맞지 않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신호등을 건너기 위해 잠깐 뛰고 나서도 심장이 조여오고 통증을 느꼈다. 그러니 마라톤은 꿈도 꾸지 않았다. 못 하겠다고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몸의 상태를 살피며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금씩 운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10킬로미터를 천천히 달렸다. 예전에는 잠깐 뛰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이제는 달리는 동작이 한결 수월해졌음을 느낀다.

내 생각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젊은이들 틈에 섞여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나이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몸으로 익히고, 해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늦었지만 늦은 것만은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나이가 들어서 못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아예 꿈꾸지 않았기에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가 그만큼 좁았던 것이다.

김연수의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착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저마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이야기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말을 듣고 자란다. 여자는 이래야 하고, 어른은 저래야 하고, 나이가 들면 나잇값을 해야 한다고 배운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고, 튀는 행동은 삼가야 하며, 남들처럼 살아야 안전하다고 여긴다.

그렇게 배운 것들이 오랜 세월 쌓여 내 생각이 되고, 내 성격이 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단속한다. 그중 얼마나 많은 것이 진짜 내 생각일까.

나는 여름에 부츠를 신고 겨울에 반바지를 입어보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수는 있겠다. 그런데 그 시선이 뭐라고 나는 평생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에 맞춰 살았을까. 정작 사람들은 내게 별 관심이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유심 사상이 떠오른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 믿음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사람을 판단할 때도 내가 살아온 경험을 잣대로 삼는다.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그런데 그 사람의 사정과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 내 눈에 비친 일부일 뿐인데.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착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지금 옳다고 믿는 생각도 십 년 뒤에는 우스운 착각으로 보일지 모른다. 실제로 나는 예전에 확신했던 것들을 지금은 의심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을 하나씩 뒤집어 보고 싶다. 익숙한 길을 반대로 걸어보고, 늘 하던 일을 하지 않아 보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일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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