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기억을 붙잡는다

by문이

오늘 새벽 달리기의 수확물을 풀어놓아 보련다.

요즘 나는 오디오북으로 김애란의 소설 <바깥은 여름>을 들으며 달린다.

우리는 소설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좋아한다. 오디오북으로 바카라을 읽는 일은 잠깐 딴생각을 하면 금방 내용을 놓치기 쉬워 집중이 필요하다. 그런데 달리다 보면 주변의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나무를 보다가, 길가에 핀 꽃을 보다가, 건물을 보다가, 어디선가 풍겨오는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다가 금방 이야기 밖으로 이탈하고 만다.

그러면 되감기를 해서 놓친 부분 언저리부터 다시 들어야 한다.
한참 듣다가 또 무언가에 정신이 팔리면 다시 되감기.
번거롭기는 해도 이 과정에서 좋은 점이 있다. 같은 부분을 여러 번 듣게 되면서 내용과 표현이 머리에 새겨진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존재인가 보다. 나는 달리면서도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그 특성을 자주 이용한다.

가령 영어 알파벳을 배우는 어린 학생이 b와 d를 자꾸 헷갈릴 때가 있다.

"밥 먹는 손이 어디야?"

그러면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 오른손을 번쩍 든다.

"그래. 그 오른손 쪽에 동그라미가 붙은 게 b야. 기억해."

물론 왼손잡이에게는 반대로 설명한다.

초등 고학년 아이에게 소수의 곱셈을 설명할 때도 손을 등장시킨다.

"넌 어떤 손이 힘이 세?"

"이 손이요."

오른손잡이 아이가 오른손을 든다.

“그래, 소수에 10, 100, 1000을 곱하면 숫자가 커지니까 힘센 오른손 쪽으로 소수점을 0의 개수만큼 옮기는 거야.”

그냥 외우라고 하면 늘 헤깔리는 아이도 자기 손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인다. 아무것도 없던 글자와 숫자에 작은 이야기 하나를 입힌다



이런 기억은 오래간다.

나에게도 그런 것들이 많다. 바카라에서 읽은 문장보다 그 바카라을 들고 앉아 있던 장소가 먼저 떠오르기도 하고, 여행지의 이름보다 그곳에서 헤맸던 일이 더 선명하기도 하다. 계획대로 잘 흘러간 하루보다 엉뚱한 일이 벌어진 날에 쓸거리가 많다.

다채로운 하루를 살고자 나는 자꾸 밖으로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달리고, 걷고, 자전거를 타고, 처음 가는 길에서 헤매고, 사람을 만나고, 낯선 것을 구경한다. 돌아와 글을 쓰려고 앉으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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