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속으로 페달을 밟는다

by문이


여름을 지나고 있는 바람이 조금 선선해졌다. 바람 때문인지 강물도 한여름보다 검푸르다.


아침 강가의 생명들도 일찌감치 아침을 맞는다.


푸른 보랏빛, 진분홍빛 나팔꽃들이 강가 울타리를 타고 올라와 나팔을 하나씩 들고 있다. 두 손을 입가에 모으고 외치는 것 같다.

“뚜뚜, 일어나요. 새날이에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아침마다 기상나팔을 분다.


길가의 연노란 달맞이꽃은 밤새 품었던 달빛을 아침 햇살 아래 풀어놓는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꽃잎에 남아 있던 노란 빛을 허공에 흩뿌린다. 그 뒤로 펼쳐진 논도 색이 달라졌다. 한동안 온통 진초록이던 벼가 낟알 때문인지 어느새 누런빛을 조금씩 머금고 있다. 여름과 가을이 서로 섞여드는 찰라이다.


둑에는 가마우지 여러 마리가 줄지어 앉아 있다. 어떤 놈은 양쪽 날개죽지를 쫙 펼친 채 아침 햇살에 젖은 날개를 말린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그 앞을 지나간다.


작은 바람에도 길가의 포플러 잎들이 제각기 몸을 뒤집는다. 뒤집혔다 엎어졌다,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도무지 박자가 없다. 마치 축제에 나온 사람들이 저마다 제 음악에 취해 막춤을 추는 것 같다.


높이 자란 풀줄기 사이에는 거미가 다각형의 집을 지어놓았다. 비스듬이 비추는 햇빛에 은빛 거미줄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허공을 도화지 삼아 가느다란 선으로 그려놓은 그림 같다.


아라천 가장자리에는 버드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가지들이 물을 향해 발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내리막이 나타나면 페달에서 힘을 빼고 자전거에 긴장한 몸을 맡긴다. 산 하나를 내려가듯 속도가 붙는다. 자전거는 짧고 굵게 떨리고 내 볼살도 촘촘한 파동을 일으킨다.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이럴 때는 나도 제법 라이더 같다.


문제는 오르막이다.

기어가 고장 났으니 잔꾀를 부릴 수도 없다. 높은 자전거에서 힘겹게 내려온다. 허벅지에 묵직한 통증이 기분좋게 전해지고 꼬리뼈가 얼얼하다. 두 팔을 쭉 뻗어 핸들을 붙들고, 척추는 쫙 펴고 ,다리를 땅의 경사에 맞서 버티며 걷는다. 스트레칭하는 느낌이다.

해가 높아지면 손수건과 팔토시에 물을 적셔 피부를 보호한다. 물이 마르는 동안 피부의 열도 함께 빠져나가 잠시 시원하다. 여름 라이딩을 하면서 몸으로 터득한 방법이다.


다시 평지가 나오면 속도를 낸다. 페달을 빠르게 밟는다. 한동안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숨소리만 들린다. 다리도, 팔도, 눈도 앞으로 모인다. 몸의 긴장이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이상하게 희열이 찾아온다. 영화 속 주인공이 극도의 몰입에 빠져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춰버린 순간처럼 나도 혼자 흉내를 내본다.


그러다 힘들면 발을 그대로 둔다. 자전거는 내가 쉬는 동안에도 앞으로 간다. 열심히 달린 대가로 얻는 몇 초의 공짜 휴식이다. 바퀴가 나를 데리고 가는 동안 숨을 고르고 다시 주변을 본다.

눈에 걸리는 것이 너무 많다. 달리다가 멈추고, 사진을 찍고, 휴대전화를 꺼내 몇 자 적는다. 또 달리다가 무언가를 발견하면 브레이크를 잡는다.


강 건너편으로 기차처럼 기다란 비닐하우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걷어 올린 비닐 사이로 안쪽의 풍경이 살짝씩 보인다. 엊그제 심은 것 같던 열무가 어느새 부쩍 자라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수확하느라 손을 부지런히 놀린다. 다른 동에는 이름 모를 작물의 새싹들이 흙을 밀어 올리며 삐죽삐죽 솟아 있고, 또 다른 동에서는 곱게 갈아엎은 흙 위로 천장에서 비처럼 물이 뿌려진다.


계양구 벌말교를 지나 김포시 백운교를 지나고, 하나교를 지나 물류센터 쪽으로 달린다. 길 위에는 아침 햇살이 나무 그림자를 길게 눕혀놓았다.

내 그림자도 그 사이에 끼어든다.

해가 길 위에 나랑 자전거를 한 몸으로 붙여놓았다. 긴 팔과 긴 다리, 두 개의 커다란 바퀴를 달고 달리는, 아침에만 나타나는 이상한 동물 같다. 내가 페달을 밟으면 그도 달리고 내가 멈추면 그도 말없이 멈춘다.


김포공항이 가까워지자 비행기 한 대가 낮게 날아간다.

파란 하늘에 비행기가 한 대 박혔다. 너무 낮고 커서 손을 뻗으면 비행기 밑바닥에 닿을 것 같다. 고개를 젖혀 한참 바라본다.


이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그림을 그릴 때 비행기를 유난히 크게 그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매일 머리 위로 이렇게 커다란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자라니 그럴 만도 하다.

사람은 본 대로 그리는구나.

오늘 아침 내가 쓰는 글에도 내가 본 것들이 그대로 쓰여지듯이.


비행기는 어느새 멀어지고 있다. 나도 다시 페달을 밟는다.

돌아오는 길, 강 위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솟구쳤다.

철퍼덕!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잉어였나 보다.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은 한국화에서나 보았다. 그림 속 잉어는 소리가 없었는데 진짜 잉어는 달랐다. 물을 박차고 솟구쳤다가 온몸으로 강을 내려쳤다. 힘이 넘쳤다.


나는 브레이크를 잡았다. 자전거를 세우고 강을 바라본다. 둥근 물결이 몇 겹으로 퍼지다가 사라진다.

혹시 한 번 더 뛰어오르려나.


한참을 기다렸다.


이번에도 집에 빨리 돌아가기는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