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다는 인간다움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by문이

아침 7시 30분 조조 영화를 보러 혼자 극장에 갔다.
세 시간 가까운 영화를 아침부터 혼자 보겠다고 나선 나를 보고 남편은 외계인 보듯하더니 "대단하다"는 한마디를 남겼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오디세우스 역의 맷 데이먼을 비롯해 앤 해서웨이, 톰 홀랜드, 로버트 패틴슨, 젠데이아, 샤를리즈 테론 등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화려하다.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 트로이 전쟁, 트로이 목마, 오디세우스의 귀환. 결말까지 아는 이야기를 굳이 세 시간 동안 다시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오래된 이야기가 수천 년을 살아남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거대한 화면으로 펼쳐지는 자연이 볼 만했다. 출렁이는 짙푸른 바다 위 배에 내가 실제 타고 있는 듯했고, 닻을 내리고 언덕이 보이는 섬에 직접 발을 내딛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실감 났다. 상상만 했던 거인의 모습과 목마의 구조, 지옥의 망자들, 갑옷을 입은 병사들, 거대한 배와 바다를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그렸던 장면들이 눈앞의 풍경이 되었다.

특히 트로이 목마가 그랬다.
우리는 트로이 목마를 너무 잘 안다. 오디세우스가 거대한 나무 말을 만들어 그 안에 병사들을 숨기고 트로이 성 안으로 들어갔다. 역사바카라에서는 몇 줄이면 끝난다.
그런데 영화는 그 몇 줄 안으로 카메라를 들이민다.
목마 안은 생각보다 좁고 어둡다. 병사들은 갑옷을 입은 채 서로 몸을 붙이고 숨죽여 기다린다. 들키면 죽는다. 글로 읽을 때는 기막힌 계략이었던 것이 화면에서는 사람의 공포가 되었다. 좁은 목마 안에 물이 차오르고, 죽은 동료의 시체와 배설물 곁에서 견뎌야 하는 상황까지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런데 승리하고 난 뒤 남은 것은 무엇인가.
불타는 도시와 죽은 사람들, 폐허였다.
나는 오히려 그때부터 오디세우스에게 마음이 갔다. 그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지만 자신의 승리를 마냥 기뻐하지 못한다.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죄바카라감과 전쟁 뒤의 허무가 찾아든다.

최근 읽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다. 노인은 그토록 잡고 싶었던 거대한 청새치를 마침내 죽인 뒤 오히려 후회한다. 간절히 원했던 것을 손에 넣었는데, 그것을 이루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도 그랬을까. 명령에 따라 싸우고 살아남았지만 전쟁터를 떠난 뒤에도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들. 승리했다고 해서 마음까지 승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신화 속 영웅담이라기보다 그 영웅의 갑옷 안에 들어 있는 한 인간을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오디세우스처럼 영리한 사람도 귀향길에서는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
신은 화를 내고, 바다는 뒤집히고, 괴물은 나타나고, 유혹과 배신은 끊이지 않는다. 함께 출발했던 병사들을 하나씩 잃고 결국 배마저 잃는다.
그런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 취지의 조언을 듣는다.

모든 것을 통제하거나 어떻게든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맡겨라.

그 말을 듣는데 뜬금없이 비틀스의 노래가 떠올랐다.
Let it be.
그대로 두어라.

트로이 전쟁을 끝낸 것은 오디세우스의 머리였다. 생각하고 계산하고 상황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데 누구보다 능했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 앞에서 손을 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지혜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뿐일까.
살다 보면 아무리 애써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 노를 더 세게 저으면 앞으로 갈 수 있는 때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저어도 파도에 밀려 제자리로 돌아오는 때도 있다. 그때는 노를 젓는 것보다 바람과 물결에 몸을 맡기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또 하나 궁금해졌다.
우리는 왜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까.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순풍을 만나 곧장 이타카로 돌아갔다면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계속 잃는다. 동료를 잃고 배를 잃고 길을 잃는다. 괴물을 만나고 유혹에 흔들리고 배신을 당하고 죽음 가까이까지 간다. 그런데도 집으로 간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어쩌면 바로 이런 서사인지 모르겠다. 온갖 역경과 고난을 지나 자신이 구하려는 것을 끝내 구해내는 과정. 고난이 클수록 그것을 뚫고 나오는 인간의 의지는 더욱 커 보인다. 헤밍웨이의 노인이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청새치와 사투를 벌였던 것처럼.
더구나 그 의지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족과 동료, 자신이 바카라임져야 할 사람들을 향할 때 우리는 그 모습에서 인간다움을 본다.

평론가들 역시 감독이 고대 신화를 거대한 볼거리로만 만들지 않고 그 안에서 인간의 두려움과 고통, 귀환에 대한 갈망을 끌어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오디세이> 번역으로 잘 알려진 고전학자 에밀리 윌슨은 영화가 원작이 지닌 심리적·윤리적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나는 원작과 얼마나 똑같은가보다 그 오래된 이야기가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건드리는지가 더 흥미로웠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나에게 닥치는 역경도 한번 해볼 만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오디세우스가 저 지경을 겪고도 집에 갔는데 뭐.
물론 영화 한 편이 주는 용기가 얼마나 오래가겠는가.
비록 잠시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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