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율 기획전, 여름을 닮은 우리 전시회에 다녀와서
토요일 오후, 우리 세 자매는 처음으로 함께 성율 그림 전시회에 다녀왔다.
인간의 본성 안에는 신을 닮은 창작 욕구가 살아 있는 것일까?
나는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나무가 우거진 아파트 단지 속 숲길을 자주 이용한다. 걷다가 자주 회색빛 시멘트 바닥으로 눈길이 향한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빛과 그림자만으로 이루어진 무늬가 바닥에서 반짝이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작은 나뭇잎들이 잔잔한 바람에 쉼 없이 물결처럼 흔들린다. 살아 숨 쉬는 작은 점들이 향기처럼 퍼지고 파도처럼 함께 흔들리는 순간, 그 모습을 화가가 되어 종이 위에 붙들어놓고 싶은 충동이 자주 일었다.
끝날 거 같지 않던 장마가 그치고 파란 하늘에 하얀 적란운이 뭉게뭉게 솜처럼 피어오를 때도 그 모습에 반해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풍경과 색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화가가 부러웠다.
내가 화가라면 이 순간, 이 느낌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놓을 텐데.
이번 전시회에는 내가 그려보고 싶었던 그런 그림들이 있었다.
빛과 그림자, 초록 나뭇잎들의 노래, 물 위의 윤슬.
내가 산바카라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던 것들이 그림 속에 들어가 있었다.
전시관 안에는 화가가 평소에 써 온 글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그림만으로는 알 수 없는 그의 인간적인 내면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지나간 기억을 붙들려 하고, 사색하며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내향형 화가였다.
그림과 글 속에는 성장통을 겪으며 급속히 변화하는 시절, 어린 시절을 닮은 여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림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지나간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십 대, 이십 대 아이들이 온다면 더욱 공감하고 감동하고 위로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들과 조카들이 떠올랐다.
한 터널 그림을 보는 순간에는 예전에 방영했던 인기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터널 장면도 생각났다. 그림 하나가 오래전에 보았던 드라마 속 한 장면까지 끌어냈다.
전시장에서는 그림자를 이용해 내 모습도 연출해 보았다. 그 배경 속에 들어서면 무엇이든 작품이 될 것 같았다. 빛과 그림자 사이에 서서 나도 잠시 그림의 일부가 되어보았다.
순간을 바라보고 포착해내는 힘.
화가는 그런 감성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전시관을 빠져나와 우리는 이태원 골목을 걸어보기로 했다.
걷다 보니 조금 전 그림에서 보았던 풍경들이 실제 거리 곳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아, 저거네. 아까 작품에서 봤던 구름.”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피어 있었다.
“저 나뭇잎들도. 나도 저런 거 그려보고 싶다.”
내 말을 들은 동생이 동네에 그림 가르쳐주는 곳이 있다며 한번 배워보라고 했다.
“아니야, 시간이 없어서 안 될 것 같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 시간이 없어서일까.
아직 자신이 없거나, 그림을 배울 만큼 욕구가 충분하지 않거나, 그런 듯하다.
그러면서도 걸음을 옮기며 자꾸 구름을 보고 나뭇잎을 보았다.
그림을 보고 나온 뒤라서인지 평소 보던 풍경이 조금 달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