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슬롯 연극을 보고
어제 수업을 마치자마자 혜화역으로 달려갔다. 엄작가님과 오래전부터 보기로 약속했던 연극, 〈죽은 시인의 슬롯〉를 보기 위해서였다.
공연은 저녁 8시부터 10시 5분까지.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도, 저녁을 먹을 여유도 없었다. 퇴근길 피곤한 몸을 지하철에 맡기고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 오디오북을 틀었다. 성우의 차분한 목소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기보다 졸음을 토닥이는 자장가 같았다.
요즘 '참교육'이 자주 화제가 되어서일까. 이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오른 것이 반가웠다.
키팅 선생님 역은 연정훈 배우였다. 어느새 그에게도 세월이 흘렀다. 힘을 뺀 담담한 연기와 학생들을 바라보는 잔잔한 미소가 오히려 더 깊게 다가왔다.
객석은 거의 가득 찼고, 2층 구조의 무대는 생각보다 웅장했다. 특히 죽은 시인회의 아지트를 표현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학교 바카라상들이 천장에서 천천히 내려와 동굴이 되는 연출은 익숙한 교실이 순식간에 아이들만의 비밀 공간으로 변하는 마법 같았다.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살아라.'
'남이 정해 준 삶이 아니라 너 자신의 삶을 살아라.'
'너는 어떤 시를 쓸 것인가.'
'너를 가슴 뛰게 하는 단어는 무엇인가.'
그 질문을 받은 아이들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연극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닐 페리는 끝내 자신의 꿈을 지켜내지 못한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퍽을 연기하며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지만, 아버지의 권위 앞에서 그 꿈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 비극은 오래전 영화를 처음 봤을 때처럼 이번에도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 이 작품을 만났다면 조금은 다른 선택을 했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 다만 그 시절의 나에게도 "너는 무엇을 원하는가?"라고 묻는 어른 한 사람쯤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역시 마지막이었다.
학생들이 하나둘 바카라상 위로 올라가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는 순간.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었다. 세상을 다른 높이에서 바라보라는 키팅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슬롯가 만들어 놓은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 틀은 나이가 들어도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뉴턴보다 아인슈타인의 관점이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세상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는 일.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데 사람들이 한 배우를 둘러싸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무대에서 분명 봤던 배우인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냥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도 키팅 선생님의 질문 하나만은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너는 어떤 시를 쓰며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