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숲이 되기까지

by문이

최기순 감독님이 운영하는 '나는 숲이다'로 모임 워크숍을 갔습니다. 그곳에 지어진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숲이다>를 보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관련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영화에는 최기순 감독이 아무르표범을 찾아 헤맨 20여 년의 여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1962년, 동물원에서 죽어가던 우리나라의 마지막 표범 한 마리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호랑이라고만 알고 있던 한반도의 맹수 가운데에는 ‘아무르표범’도 있었습니다. 철창 안에서 죽어가던 표범의 슬픈 눈빛은 오랫동안 감독님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눈빛을 따라 감독님의 집요한 추적과 관찰이 시작되었습니다.

러시아 연해주의 산은 우리나라 산과 무척 닮아 있었습니다.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표범이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감독님은 아무르표범의 고향이 어쩌면 우리나라일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화면 속 표범은 위엄 있고 기품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매화 무늬 가죽을 탐낸 사람들과 사람을 해친다는 이유로 무차별하게 포획되면서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표범은 러시아에서 보호받으며 간신히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영화를 사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감독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팔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영상물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신념이 담긴 기록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감독님은 표범을 만나기 위해 땅굴을 파고 잠복했습니다. 나무 위에는 까치집처럼 작은 텐트를 지어 며칠씩 머물렀고, 꽁꽁 언 밥을 씹으며 표범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언제 올지, 과연 나타나기는 할지 알 수 없는 존재를 기다리는 일. 체력도 제작비도 바닥나는 시간을 견디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하려고 나서는 사람도 드문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독님에게는 언젠가 우리나라의 숲에도 다시 표범이 살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꿈이라기보다 사명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수컷 표범 뜨리와 암컷 표범 마야, 그들의 새끼 희망이, 다시 희망이의 새끼인 블라디와 보스톡까지. 영화에는 한 표범 가족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개체 수가 너무 적어 종족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근친 교배를 피하기 어려웠던 표범들의 운명도 따라왔습니다.

가장 놀라운 장면은 엄마 마야가 새끼 희망이를 데리고 감독님에게 다가온 순간이었습니다. 마야는 감독님과 불과 2미터 거리까지 다가왔습니다. 야생의 표범이 사람에게 새끼를 데리고 접근했다는 것은 오랜 시간 쌓인 교감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10년 뒤 마야는 덫에 걸려 죽었습니다.

감독님은 홀로 남은 희망이가 걱정되어 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또 다른 1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체력이 바닥나고 제작비가 떨어질 때까지 희망이의 삶을 따라갔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감독님의 삶도 흘러갔습니다. 어린 아들과 함께 표범을 보았던 일이 아들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감독님이 표범의 가족을 지켜보는 사이, 자신의 가족은 곁을 떠났습니다. 숲속에서 표범을 기다리는 시간만큼이나 가족을 그리워하는 고독한 날들도 이어졌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하려면 아버지가 되어봐야 하고, 숲을 이해하려면 숲이 되어야 한다.”

영화 속에서 감독님의 가족 이야기와 표범의 가족 이야기가 서서히 포개졌습니다. 새끼를 지키는 마야와 아들을 그리워하는 감독님, 가족을 잃고도 숲을 떠나지 못하는 희망이와 감독님의 모습이 서로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숲으로 간다. 숲에 내가 있다. 나는 숲이다.”

마지막 음성이 흐르자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옆에 앉은 작가님도 울고 있었고, 자신의 20년을 화면으로 바라본 감독님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습니다.

극장 밖으로 나오자 조금 전까지 걸었던 숲이 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나무 사이 어딘가에서 뜨리와 마야와 희망이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한 사람이 견뎌온 시간이 숲에 스며들어 있었고, 그 뜻을 따라온 사람들이 지금 그 숲길 위에 함께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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