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짝꿍과 도봉산

by문이

여행은 지금의 내가 괜찮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다.
힘든 여행일수록 더 그렇다.

주말에 짝꿍과 등산을 했다.

글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무거운 구형 노트북을 펴고 시원한 카페에 있던 나에게,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남편이 문자를 보내왔다. 갑자기 도봉산 둘레길을 가잔다. 오랜만에 데이트를 해볼까? 설레는 마음으로 오케이 했다.

더운 여름 산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나마 해가 퇴근을 준비하는 오후 네 시가 넘어서 올랐으니 망정이지. 산 아래에서 조금만 걷고 오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도봉사라는 천 년 된 절도 흘깃 보고, 갖가지 안내 표지판과 식물들도 유심히 살피며 천천히 올랐다. 계단에서는 무릎 보호를 위해 뒤꿈치 쪽으로 발을 디디고 옆으로 몸을 틀어 올랐다. 짝꿍이 실력이 좋아졌다고 한마디 해 주니 신이 나서 앞서 걸었다.

"아니, 이 무거운 노트북을 메고 등산이라니. 이것도 웃기다."

이렇게 말하는 짝꿍의 등을 보니 가방이 닿아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내가 좀 메고 갈게."

조용히 하산하는 나이 든 아주머니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의외로 너무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 주셔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산에 오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의 짐을 덜고 빈자리에 엔도르핀이 채워지는 걸까?

조금만 더 올라가자며 가다 보니 어느새 산 중턱까지 와 있었다. 바람 한 줄기가 고맙다. 물이 마시고 싶다.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고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했다. 내려가서 아들을 만나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또 행복했다.

종로3가에서 내려 아들을 만났다. 짝꿍은 우리를 오래된 보쌈 골목으로 안내했다. 여름에 굴보쌈이라니. 유명세 탓인지 단체 손님과 개인 손님들로 북적였다.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찬 건장한 남자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친절한 타국 출신의 젊은 아가씨가 서빙을 했다. 새콤하게 양념한 굴과 문어, 멍게가 한 접시에 담겼다. 달짝지근한 오징어볶음, 뜨끈한 감자탕까지 서비스다. 푸짐한 보쌈에 입이 즐거웠다.

왕복 세 시간을 지하철로 오가고 저녁까지 먹고 나니 밤 아홉 시가 훌쩍 넘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고 답답했던 양말을 벗어 던진 채 의자에 몸을 기댔다. 발의 얼얼함이 서서히 풀리고 온몸의 긴장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아, 좋다."

역시 집이 최고다. 정든 동네, 익숙한 골목, 안락한 내 방.

그래서 가끔은 여행이 필요하다. 조금은 피곤하고, 조금은 힘든 여행. 익숙한 일상을 잠시 떠나야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편안하고 고마운지 다시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