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나물을 씻으며

by문이


전날 밤만 해도 너무 피곤했다. 몸이 축 늘어져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다. 이대로 누워만 있다가 하루가 끝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벽에 눈을 뜨자 전혀 다른 몸이 되어 있었다. 머릿속이 맑고, 몸 안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조용히 바카라을 읽기 시작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지 말고 움직이라고, 몸이 먼저 아우성치는 느낌이었다.

부엌으로 갔다. 통밀 식빵을 꺼내고, 그 위에 노란 체다치즈를 올려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렸다. 녹아내린 치즈 위에 딸기잼을 조금 바르고, 계란프라이를 해서 올리고, 토마토 조각을 얹었다. 네 개를 만들었다. 남편 도시락에도 넣고, 나도 먹고, 남편도 함께 먹었다.

그런데도 에너지가 남았다.

“그래, 봄나물이나 데쳐야겠다.”

봄이 지나가기 전에 먹어야 제맛이라는 생각으로 뒤늦게 사다 놓은 나물들이 떠올랐다. 두릅을 손질하는데 잔가시가 손끝을 콕콕 찔렀다. 그런데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몸 안에 기운이 돌면 작은 불편쯤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취나물도 손질했다. 뻣뻣한 줄기를 떼어내고 소금을 조금 넣은 물에 데쳤다. 찬물에 헹구는데 하얀 거품이 한가득 올라왔다.

예전 같았으면 덜컥 겁부터 났을 것이다. 실제로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는 세제가 잘못 들어간 줄 알았다. 냄새도 맡아보고, 몇 번이고 다시 헹구었다. 그래도 거품은 계속 올라왔다. ‘혹시 세제가 안 씻긴 건가?’ 별별 상상을 다 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나물 속 어떤 성분 때문이라고 했다. 몸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번에는 그 기억 덕분인지 거품을 보며 괜히 뿌듯했다. ‘아, 좋은 성분이 나오는 거구나.’ 같은 장면인데도 마음은 전혀 다르게 반응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인간은 늘 자신이 믿는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사는 것 같다. 오래 산 노인일수록 고집이 세다. 고정관념, 선입견에 지배당한다. 잘 모르는 것은 의심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은 위험하다고 단정한다. 한번 씌워진 생각은 좀처럼 벗겨지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본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대부분 자기 경험과 기억, 두려움이 덧씌워진 색안경을 통해 세상을 본다. 정확한 맨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삶은 끊임없이 색안경을 벗어내는 연습인지도 모르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