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에서 마주한 윌리엄의 또 다른 얼굴
The city is watered by the fish-rich Ouse Which flows past flowery plains on every side; 물고기 풍부한 오우즈강이 도시를 적시고 강은 사방으로 꽃이 핀 들판을 지나 흐른다.
- 앨퀸(Alcuin of York), (8세기)
요크의 성벽 위에 서면 오우즈강(River Ouse)이 시내를 가로지른다. 1,200여 년 전 앨퀸이 노래했던 바로 그 강이다.
오래전부터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물길을 바라보며 이곳에 두 개의 성을 세웠던 윌리엄 정복왕을 생각한다. 헤이스팅스에서 잉글랜드 왕관을 차지한 그는 왜 이 북쪽 도시까지 와서 싸워야 했을까.
영국과 프랑스 사이, 가장 좁은 곳이 30여 킬로미터에 불과한 도버 해협이다. 그 바다 건너에는 오래전, 센강을 따라 프랑크 왕국으로 들어온 바이킹 지도자 롤로(Rollo)가 있었다.
롤로, 해적에서 영주로 – 노르만의 뿌리
911년, 롤로는 서프랑크 왕 샤를 3세(Charles the Simple)와 생클레르쉬르엡트에서 협정을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기독교로 개종하고 왕국을 방어하는 조건으로 루앙을 중심으로 한 센강 하류의 영지를 인정받았다. 이듬해 롤로는 세례를 받았다. 바이킹이 약탈하던 땅은 이제 그들이 정착해 다스리는 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롤로의 후손들은 영지를 넓혀갔고, 이 땅은 노르망디(Normandy)로 발전했다.
‘노르만(Norman)’이라는 이름도 ‘북쪽에서 온 사람들(Northmen)’에서 비롯되었다. 요르비크도 바이킹의 도시였다.
팔레즈에서 태어난 혼외자
1028년 무렵, 훗날 그 요크를 정복하게 될 바이킹의 후손이 노르망디의 팔레즈(Falaise)에서 태어났다. 윌리엄(William)이다.
아버지는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1세(Robert I), 어머니는 에를레바(Herlève)였다. 두 사람은 혼인하지 않았고, 윌리엄은 혼외자로 태어났다. 1035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일곱 살 남짓한 윌리엄은 노르망디 공작위를 물려받았다.
어린 공작의 지위는 불안했다. 노르망디 귀족들의 권력 다툼과 반란이 이어졌고, 윌리엄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지배권을 지켜야 했다. 1047년 이후 반란을 진압하고 주변 세력과 싸우며 노르망디에 대한 통제력을 굳혀갔다.
팔레즈에서 혼외자로 태어난 이 어린 공작은 훗날 도버 해협을 건너 잉글랜드를 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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