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블스의 마법 같은 골목, 성곽의 문, 요크 민스터
…a cobbled street which twisted and turned out of sight.
……구불구불 이어져 시야 너머로 사라지는 돌길.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1997)
해리가 처음 다이애건 앨리(Diagon Alley)에 들어섰을 때도 이런 풍경이었을까. 좁고 굽은 돌길을 따라 목조 건물들이 늘어서고,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건물들이 길 쪽으로 기울어진다. 이곳이 바로 요크의 셈블스(The Shambles)다.
셈블스, 중세와 해리포터의 마법이 만나는 거리
중세에는 이 거리에 정육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Shambles’라는 이름도 ‘고기를 진열하는 선반’을 뜻하는 앵글로색슨어 Fleshammels에서 비롯되었다. 몇몇 건물에는 지금도 고기를 진열하던 넓은 선반과 쇠갈고리가 남아 있다.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좁은 돌길 양쪽으로 이어지는 모습 때문에 셈블스는 흔히 ‘현실 속 다이애건 앨리’라 불린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 K. 롤링(1965~)은 셈블스를 다이애건 앨리의 모델로 삼지 않았다고 밝혔다.
골목 어귀에는 The Shop That Must Not Be Named 같은 해리 포터 관련 상점도 들어서 있다. 마법 지팡이와 부엉이가 진열된 가게 앞에는 여행자들이 줄을 선다. 누구나 잠시 마법사가 되는 이 거리에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이야기가 흐른다.
로마의 에보라쿰, 바이킹의 요르비크
요크(York)는 로마 시대에는 에보라쿰(Eboracum), 앵글로색슨 시대에는 에오포르윅(Eoforwic), 바이킹 시대에는 요르비크(Jórvík)라 불렸다. 시대와 언어가 바뀌면서 도시의 이름도 모습을 바꾸었고, 중세를 거치며 지금의 York가 되었다.
오우즈강가에 잠시 앉아 유람선이 오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가까이에서 포스강(River Foss)이 이 강으로 합류하고, 오우즈강은 남쪽으로 흘러 험버 하구를 거쳐 북해로 이어진다. 두 강이 만나는 이 일대에서 요크가 성장했다.
AD 71년, 로마 제9군단은 이 합류점 가까이에 군단 요새를 세웠다. 이것이 에보라쿰(Eboracum), 오늘날 요크의 시작이었다. 요새 주변과 강 건너에는 주거지와 목욕시설, 상업지구가 들어서며 도시가 성장했고, 에보라쿰은 북부 브리타니아의 중요한 군사·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민간 정착지는 식민도시(colonia)의 지위를 얻으며 군사 요새와 함께 로마 도시를 이루었다.
그 로마 성벽의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요크 박물관 정원(Museum Gardens)의 멀티앵귤러 타워(Multangular Tower)다. 가까이에서 보면 돌의 모양이 위아래로 다르다. 아래쪽의 작은 석회암 블록과 붉은 타일 층은 로마 시대에 쌓은 부분이고, 그 위의 크고 거친 돌은 중세에 다시 올린 부분이다.
길게 이어지는 성벽에 로마와 중세의 돌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
이곳 요크에서 211년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가 세상을 떠났다. 한 세기 가까이 지난 306년에는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가 에보라쿰에서 세상을 떠나자, 군대가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이곳에서 황제로 선포했다. 훗날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e the Great)가 되는 그의 황제로서의 출발점이 요크였다.
요크 민스터 남쪽에는 지금도 검을 든 콘스탄티누스의 동상이 앉아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발아래다. 민스터 지하에는 로마 군단 요새 본부의 유적이 남아 있다. 콘스탄티누스가 황제로 추대된 장소 역시 이 부근이었을까.
이 동상은 로마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1998년 조각가 필립 잭슨(Philip Jackson)이 만든 작품이다. 동상을 자세히 보니 콘스탄티누스가 쥔 검의 끝이 부러진 모양이다. 검은 십자가의 형태를 이룬다. 조각가가 기독교와 콘스탄티누스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동상 앞면에는 ‘Constantine, by this sign conquer’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312년 밀비우스 다리 전투를 앞두고 콘스탄티누스가 십자가의 표징과 함께 승리의 계시를 보았다는 전승에서 가져온 말이다.
바이킹의 북방 진출, 요르비크의 등장
866년, 바이킹 대군세(Great Heathen Army)가 요크를 점령했다. 이듬해 노섬브리아 세력의 탈환 시도마저 물리치면서 바이킹의 지배가 굳어졌다. 앵글로색슨의 에오포르윅(Eoforwic)은 이제 바이킹의 요르비크(Jórvík)가 된다.
요르비크는 북부의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 성장했다. 오우즈강에서 험버 하구를 거쳐 북해로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은과 모피, 곡물을 비롯한 물품이 오갔고, 당시에는 노예도 거래되었다. 시장에는 상인과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