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비가 그칠 때까지 곁에 있는 일

by키다리아저씨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맛있는 걸 먹으며 좋아하는 모습, 별것 아닌 농담에 웃는 모습, 오늘 하루가 좋았다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그럴 때의 사랑은 맑은 날의 산바카라과 닮았다.

어디로 걸어가도 좋고, 굳이 목적지가 없어도 즐겁다.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날들이 있다.

나는 그런 날이 사랑의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하다 보니 알게 됐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맑은 날만 함께 걷는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예고 없이 비가 내리는 날도 함께 지나가는 일이었다.

마음이라는 건 날씨와 닮아서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침에는 분명 괜찮았는데 오후가 되면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고, 아무리 애써도 좀처럼 맑아지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처음에는 나도 자꾸 방법을 찾았다.

무슨 말을 해줘야 괜찮아질까.

어디를 데려가야 다시 웃을까.

내가 무엇을 해주면 이 비를 멈출 수 있을까.

사랑하니까 당연히 해결해주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비를 맞고 있는데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우산을 씌워주려고 했고,
비를 피할 곳을 찾아주려고 했고,
때로는 비가 오지 않는 곳으로 억지로 데려가려고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내가 그 사람의 날씨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어떤 비는 우산을 써도 젖는다.

어떤 마음은 좋은 말을 백 마디 건네도 금세 괜찮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비를 멈추게 하는 것보다 그냥 함께 비를 바라보는 것이 더 필요한 순간도 있었다.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씩 달라졌다.

말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기다려주는 것.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꼭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것.

괜찮아질 이유를 찾아주는 대신, 괜찮지 않은 채로 있어도 되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나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뿐만 아니라 우울한 순간까지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됐다.

그리고 어느 날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행복하고 좋은 순간은 다시 반복될 수 있지만, 불행하고 우울한 순간은 반복되지 않는다고.

다시는 비가 오지 않을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살다 보면 또 비가 올 것이다.

소나기처럼 잠깐 지나가는 날도 있을 것이고, 며칠 동안 하늘이 흐린 날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 모든 비를 막아줄 수도 없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오늘 내리는 비는 오늘의 비라는 것.

아무리 오래 내리는 것처럼 느껴져도 지금 이 시간과 지금의 마음이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머물지는 않는다는 것.

오늘의 힘듦은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오늘일 수 없다.

하지만 행복은 조금 다르다.

행복했던 순간은 우리가 다시 만나러 갈 수 있다.

같이 맛있는 걸 먹었던 날이 좋았다면 다시 먹으러 가면 된다.

걷다가 별것 아닌 이야기에 한참을 웃었던 날이 좋았다면 또 같이 걸으면 된다.

좋았던 여행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떠나면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행복했던 하루가 있었다면 그런 평범한 하루를 또 만들어가면 된다.

좋은 기억에는 다시 찾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을 저축처럼 생각하기보다 지도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됐다.

우리가 함께 행복했던 순간마다 작은 표시 하나를 남겨두는 것이다.

여기서 많이 웃었고,
여기서 맛있는 걸 먹었고,
여기서 서로를 바라보며 참 좋았다고.

그러다 삶이 조금 힘들어지는 날이면 그 지도를 펼쳐보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시 찾아갈 곳이 이렇게 많다고.

물론 힘든 사람에게 쉽게 “다 지나갈 거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비를 맞지 않는 사람이 비를 맞고 있는 사람에게
“조금 있으면 그칠 거야”라고 말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니까.

그 사람에게 중요한 건 언제 비가 그치는지보다 지금 자신이 혼자 비를 맞고 있지 않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지나갈 거라고 알려주는 것보다 지나가는 동안 옆에 있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날에는 같이 웃고,

좋지 않은 날에는 조금 더 가까이 있는 것.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많이 웃었으면 좋겠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언제나 맑아야 한다고 바라지는 않는다.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매일 햇빛만 들 수 있을까.

구름이 가득한 날도 있을 것이고,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그 비가 왜 내리는지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늘을 맑게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대신 하나는 약속할 수 있다.

나는 맑은 날의 너만 사랑하지 않겠다고.

환하게 웃는 너도,

별것 아닌 일에 신나 하는 너도,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싶은 너도,

오늘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 벅찬 너도.

모두 내가 사랑하는 같은 사람이니까.

예전에는 평생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아주 먼 미래를 떠올렸다.

몇십 년 뒤의 우리,
나이가 든 모습,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두 사람.

그런데 요즘은 평생이라는 게 그렇게 먼 곳에 있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네 옆에 있는 것.

그리고 내일도 네 옆에 있는 것.

맑은 날에는 함께 걷고,
비가 오는 날에는 같은 처마 아래 잠시 서 있는 것.

비가 그치지 않는다면 조금 더 오래 서 있으면 된다.

그렇게 수많은 날씨를 함께 지나온 시간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 평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게 아닐까.

행복은 다시 만들면 된다.

좋았던 순간에는 몇 번이고 다시 찾아가면 된다.

그리고 오늘 내린 비는,
다시는 오늘의 비로 내리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네 인생에서 모든 비를 막아주는 사람이 되기보다,

비가 오는 날에도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살다 보면 맑은 날도 지나가고,
흐린 날도 지나가고,
비가 쏟아지는 날도 지나갈 것이다.

우리는 아마 앞으로 수많은 날씨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계절을 지나고도 내가 네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주 먼 훗날 우리가 함께 지나온 날들을 돌아봤을 때,

맑은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세기보다
비가 오던 날에도 서로의 곁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어쩌면 내가 말하는 평생의 사랑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네 인생에 비가 내리지 않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날씨의 너라도 사랑하며 함께 걸어가는 것.


사랑해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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