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해가 아름답다
매일 뜨고 지는 해지만 볼 때마다 아름답다.
게을러서 새벽에 뜨는 해를 보는 일은 드물다. 마음먹고 새해에 해돋이를 보거나 일출이 멋진 장소에 여행 가서 겨우 보기도 한다. 남편은 아침형 인간이라 자주 산바카라을 하며 일출을 맞을 때가 많다. 평소에는 감정 표현이 별로 없다가도 유난히 멋진 노을을 보는 날은 게으른 아내에게 꼭 사진을 보내준다. 때에 따라 색색으로 물든 다양한 아침노을 사진을 보며 감탄한다. 얼마 전에는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 사진을 받았다. 그날 그런 색의 노을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도 새벽잠을 자지 않고 꼭 나가서 보고 싶었을 정도로 처음 보는 황홀한 보라색이었다.
저녁노을은 아침에 비해 보기가 쉽다. 집 베란다에만 나가도 노을이 보인다. 그러나 제대로 노을을 보려면 바다에 가야 한다. 그래서 바닷가 여행을 할 때는 가능하면 노을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바닷가 저녁노을을 보려면 꼭 서쪽으로 가야 하고 해질 시간에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해안 산바카라을 해도 낮에 걷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서 바닷가 노을은 생각보다 보기가 쉽지는 않다.
서해 화성에 황금 해안 길이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여름에 남편과 함께 갔었다. 궁평항에서 시작하는 해안 산바카라길을 걸었다. 전체구간을 다 걷지는 못하고 두 구간을 걸었다. 경치도 좋고 소나무 숲길을 걸을 때는 주변보다 훨씬 시원한 바람도 불었다. 간이 의자를 가져와서 느긋하게 바다를 보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일찍 다녀오는 바람에 내가 보고 싶었던 저녁노을을 보지는 못했었다.
노을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즉흥적으로 남편에게 가자고 제안했다. 지난번 걷지 못했던 구간인 제부도 입구 쪽이 가장 노을이 멋지다고 해서 꼭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을을 보고 오면 해가 진 후 밤 운전을 해야 해서 귀찮을 텐데 갑작스러운 요구에도 군말 없이 운전대를 잡아준다. 내려가는 동안 서쪽 하늘에 구름이 많아서 조마조마했다. 게다가 갑자기 정한 일정이라 그 시간이 바닷물이 들어오는 만조인지 간조인지를 따질 겨를도 없었다. 도착하니 구름이 수평선 위에 약간 있어서 완벽히 수평선 너머로 직접 지는 해를 볼 수는 없었고 해안에도 물 대신 넓은 갯벌이 펼쳐진 간조 시기였다. 모든 인생이 그렇듯 좋은 조건이 다 맞아떨어지기는 힘들다. 언젠가는 바닷물이 가득 차고 구름 없이 맑은 날에 다시 와서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구름사이로 퍼지는 햇살과 넓은 갯벌과 어우러지는 노을 색이 정말 아름다웠다. 명성이 공연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붉은 노을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이곳은 이름처럼 멋진 황금빛 노을이었다.
하루를 인생에 비유하자면 저녁은 노년에 해당한다. 영화 <오디세이>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오디세우스는 자기를 찾는 천신만고의 여정 끝에 집에 돌아와서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아내 페넬로페와 함께 서쪽 바다로 항해를 떠난다. 젊은 날의 공명심과 페르소나를 벗고 자기를 찾은 인간이 노년을 보내는 방식은 배우자와 함께 소박하게 마지막 시기를 보낸다는 의미이다. 명예와 권력을 뒤로 하고 겸손하게 둘이 손잡고 걷는 것이다. 그 시기는 초라하고 쓸쓸하지만은 않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세속적인 잣대에서 벗어나서 자체의 존재감으로 빛나는 시기이다. 대낮의 강렬한 빛은 아니지만 저녁의 빛은 주변 하늘을 넓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황금빛이다. 해가 완전히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도 그 빛은 한동안 서쪽 하늘을 물들인다.
살면서 자잘한 잘못을 많이 했으나 큰 과오를 저지르지는 않았고, 명분이라고 여겼던 것들에는 나의 욕심이 들어있다는 것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젊은 날에는 옆에 있는 사람을 원망할 때도 있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착한 사람과 일생을 보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인생이었다.
남편과 황금 해안 길을 함께 걸으며 노을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