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부부
노년에 접어드니 자녀들은 독립하고 집에 부부만 남게 되었다. 일하고 아이들 키우고 부모님 보살펴 드리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시절은 어느덧 과거가 되고, 미우나 고우나 부부가 얼굴을 마주 보고 지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남아있는 나날이 길지 않은 시점, 부부의 서사를 잘 마무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도 한때는 열심히 미워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아들들을 키우면서 남편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상상하며 남자로서의 인생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사람으로서 연민을 더 많이 갖는다.
결혼을 하면 둘이 긴 시간을 같이 보내기 때문에 서로에게 영향을 많이 주고받는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도 학습한다. 그러나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성향과 생각이 똑같아질 수는 없다. 둘이 대화하고 제3의 결론을 얻는 것이 최선바카라이다. 그래서 결혼식에서 자주 듣는, 일심동체가 되라는 말은 덕담이 아니라 악담이다. 더 강한 쪽으로 통일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혼이란 인생에서 긴 시간을 차지하는 중요한 결정이다. 어떤 커플들은 지혜롭게 잘 이어가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불행하기도 하다. 이것을 실패했을 경우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 만든 작품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인생에서 남은 시간이 많고 결혼생활이 괴로운 경우 그것에 들인 매몰비용 때문에 억지로 유지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면 그것이 인생의 거의 전부인 경우 작품을 깨버리는 대신에 다른 노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의 노력은 다음과 같다.
언젠가는 자식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오겠지만 그전까지는 최소한 그들에게 부모를 재미있게 만들어달라고 할 생각은 없다. 부부가 가능한 한 독립적으로 문화생활을 해야 한다. 나의 경우 노년에 지속할 수 있는 운동을 함께 선택했고, 열심히 영화관과 미술관도 같이 다닌다. 여행도 더 늙기 전에 열심히 다니려고 한다. 일상이 아니라 이런 과정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대화를 많이 하게된다.
가능하면 밥은 같이 먹는다. 둘이 오래 머무는 집에서 힘은 들지만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 노력한다. 식생활은 노년의 건강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에 몸에 좋은 음식을 요리한다. 잘 먹고, 건강하게 살다가 가능하면 아주 나중에 조금만 아프다가 떠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한 식사를 할 때에야 둘이 마주 앉게 되니 정성스러운 음식을 식탁에 올려서 같이 사는 기쁨을 맛보고 싶다. 음식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시원한 물을 주는 것을 잊지 않듯이,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은 같이 먹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과거에도 냉전 하다가 화해를 할 때,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거나 남편이 먹으러 나가자고 제의하면 서로 공식적인 사과 없이도 풀리고는 했다.
다음은 거실 생활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구조상 티브이 맞은편에 긴 소파가 필수적으로 있다. 나도 거기에서 낮잠을 자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했었다. 그러나 살아보니 각자의 1인용 안락의자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부부여도 티브이 프로그램 취향도 다르고 모든 것을 공통적으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해도 무방한 1인용 의자의 배치가 중요하다. 나는 이쪽 구석에서 독서를, 그는 저쪽 구석에서 인터넷 바둑을 두는 식이다.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는 대신 함께 거실에서 상대방의 존재를 느끼며 각자의 활동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독립하니 빈 방도 많아졌다. 각자 공부방이 생겼다. 만일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경우라면 그 방에 들어간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거실에 따로 또 같이 앉아서 지낸다.
아! 꼭 함께 하는 일이 있기는 하다. 공포영화는 혼자 보지 않는다. 눈을 가리고 못 본 장면을 나중에 들어야 해서 같이 본다.
무엇보다 남편은 사랑하는 아이들의 아버지다. 아이들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파트너다. 그들에 대한 사랑과 걱정을 진심으로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결혼에는 많은 고비가 있겠지만 많은 부부들이 노력해서 손잡고 결승선에 도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