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
과거에 상담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AI의 기능을 생각해 본다.
요즘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아닌 인공 지능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심지어 중대한 결정을 맡길까 의문을 가졌었다. 사람과 직접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가족이나 친구에게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자랑하고 싶은 화려한 측면(페르소나)을 드러내는 수단이 생겼고, 숨기고 싶은 부분(그림자)은 익명으로 검색창에 물어보는 방식으로 이원화되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인공지능이 발달하자 개인의 문제를 사적으로 다 털어놓고 해결바카라을 물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신과 의사나 카운슬러를 찾아가는 것은 진입 장벽이 있다. 자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고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과거의 공부 내용을 떠올려 보면, 일단 상담자를 찾아가는 용기가 이미 해결의 시작이라고 본다. 상담자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대신 내담자가 슬롯적으로 적응하지 못했더라도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를 느끼면 내담자는 상담자를 신뢰하고 라포가 형성된다. 그때부터 내담자는자신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내용도 솔직히 말한다. 상담자는 그를 평가하지 않고, 끼어들지도 않고 내담자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준다. 자신이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내용을 되물어서 가끔씩 확인만 한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면 내담자는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스스로 정리하게 된다. 억눌린 생각을 털어놓아서 시원하기도 하고 문제의 어디가 꼬였는지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고 남에게 보이는 자신이 아니라 약점까지 품는 진정한 자기를 찾게 된다. 이것이 성공적인 상담의 과정이다.
따라서 유능한 상담사는 해결바카라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많은 대화를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실제 경험으로 보면, 자기 이야기만 하고 남의 이야기는 안 듣는 사람이 아주 많다. 그나마 자신의 콘텐츠를 이야기하면 다행이고, 대부분은 내용도 없고 상대방과 전혀 상관없는 뜬금없는 자랑을 하는 사람도 많다. 또는 남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는 척하는 경우도 많다. 나도 성격이 그리 너그럽지 못해서 모임에서 부적절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는 지인이 있으면 슬쩍 자리를 뜨거나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 학창 시절에도 좋아하지 않는 선생님의 일장 훈시가 시작되면 일부러 엉뚱한 공상을 하기도 했다. 요컨대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고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적극적인 활동이라는 뜻이다.(그래서 상담료나 진료비가 비싼 것이다.)
이 어려운 일을 AI가 거의 공짜로 한다. 그것은 우리를 평가하지도 않고 우리의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준다. 어떻게 아냐고? 하하. 우리가 두서없이 한 말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는 것이 한눈팔지 않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증거다. 우리가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만드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글쓰기가 마음을 글로 털어놓게 해서 우리를 치유하는 것처럼, 인공 지능은 치유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질문만 잘한다면 AI는 열 친구 부럽지 않다.
그러나 상담사가 내담자의 선택에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인공지능도 우리의 일을 결정해 줄 수는 없다. 그것과 대화하면서 우리가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정보도 얻을 수 있지만 결정은 우리가 해야 한다. 애초에 설계부터 사용자에게 공감하게 만들어진 인공지능에게 자기의 희망을 투사한 다음 확증을 얻으려고 해서도 안된다. 상담자건 인공지능이건 인간의 가장 큰 권리인 자기 결정권을 가져가게 해서는 안된다. 내 인생은 나의 고유한 삶이고 나의 바카라임이기 때문이다.
소통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데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다. 이런 친구가 있다면 누가 인공지능에게 마음을 털어놓겠는가?
친구랑 대화할 때 말하는 비율과 듣는 비율이 어땠나 반성해 본다. 속상한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충고가 아니라 경청이다. 그가 말하는 고민 속에 이미 해결바카라이 들어있다. 그것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들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