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이별

영화 <토이 스토리 5>

by윤병옥

영화 <토이 스토리>가 나온 것이 1995년이니 벌써 30년이 넘었다. 우리가 안 볼 때 장난감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그들의 세계가 따로 있다는 발상은 너무 신선해서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슈렉>에서의 못생긴 공주의 등장과 디즈니 캐릭터 비틀기, <매트릭스>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설정과 더불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매력 있는 아이디어였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가 나의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라 나도 아이들과 함께 모든 시리즈를 여러 번 보았었다.


4편이 나온 지 수년이 흐르고 5편이 또 개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과 영화관에 가서 보았다. 아이디어가 기발한 작품일수록 후속작이 실망스러운 적이 많은데,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각편 마다 새로운 캐릭터와 다른 주제를 넣어서 훌륭한 작품을 이어왔다. 1편에서는 우리가 안 볼 때 장난감들이 움직인다는 기발한 생각과 우즈와 버즈의 티격태격하는 버디 캐릭터가 기억난다. 앤디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우디가 앤디의 사랑이 버즈에게로 넘어가려 하자 질투심에 사로잡혀 고민하는 장면도 공감이 간다. 또한 버즈가 자신은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스스로 날지도 못하고 마트에 가면 수많은 버즈 장난감이 있다는 것을 보고 실망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2편에서는 제시라는 인형 장난감이 에밀리의 사랑을 받으며 꿈같은 생활을 하다가 주인의 관심사가 달라지며 이별하는 슬픈 장면과 노래가 여운이 남았었다. 3편에서는 앤디가 성장하여 대학에 가면서 정든 장난감들을 어린 보니에게 선물하면서 장난감들과 멋진 이별을 하는 따뜻한 마지막 장면을 남겼다. 4편에서는 ‘주인이 가지고 놀아주어야만 가치가 있는가’ 하는 장난감들의 존재론적 고민을 그렸다. 또한 공장에서 만들어진 매끈하고 예쁜 장난감 말고도 어린이들이 스스로 만든 서툴고 단순한 물건도 장난감이 될 수 있다는 감동이 있었다. 이때 탄생한 캐릭터가 보니가 플라스틱 포크에 헝겊으로 싼 철사로 만든 ‘포키’이다.

드디어 개봉된 5편에서는 전편에서 등장한 모든 아날로그 장난감에 대항하는 전자 디바이스인 ‘릴리패드’가 등장한다. 시대가 바뀌어 아무도 장난감을 만지며 놀지 않는다. 어린이들도 쉬운 버전의 전자 패드를 가지고 게임을 하거나 통신을 하고 친구를 만든다. 우리의 주인공 어린이 보니가 8살이 되었는데 여전히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만 친구가 없다. 또래의 친구들이 모두 릴리패드로 놀고 있기 때문이다. 걱정이 된 부모가 릴리패드를 사주자 보니도 정신없이 빠져든다. 그토록 사랑하던 제시도 팽개친다. 제시는 또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기시감에 절망한다. 과거에 에밀리와 다정했던 장소인 그네를 매단 나무로 간 제시는 나무에 “제시가 왔었다.”라고 새겨진 글씨와 에밀리가 묻었던 타임캡슐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엄마가 된 에밀리와 그의 딸 제시의 사진이 있었다. 그때 제시는 주인 에밀리가 딸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따라지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에밀리의 어린 시절, 자신이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깨닫는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은 제시는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보니가 성장하고 친구가 생기게 돕는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아기가 성장할 때 맨 처음에는 자신을 돌보는 사람을 본다. 그다음 밖에서 나무와 자동차도 보고 동물원에 가서 동물도 본다. 또 사람과 동물과 밖에서 본 집이나 자동차를 본떠서 만든 장난감을 만지고 논다. 나중에야 그들이 나오는 영상을 본다. 이 순서가 완전히 바뀌면 좋지 않다. 아직 실물을 모르는 것들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 세상보다 저세상을 먼저 보여주는 것과 같다. 어른들은 아기가 세상을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방향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 다른 친구들이 모두 휴대폰으로 연락하고 게임할 때 장난감만을 가지고 놀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친구도 못 사귀고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기 쉽다. 따라서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아날로그에 머물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영화 속에서 전자 디바이스도 점차 쓸모가 없어진다. 과거 건전지를 넣어서 작동했던 디바이스들도 창고 속에 처박히기는 마찬가지다. 영화 속 디지털 기구들도 새 버전이 나오면 구닥다리가 된다. 결국 전자기구를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흐르면서 가지고 노는 매체가 달라진다는 말일 것이다.


이런 스토리를 사람의 마음과 관계에 비유했기 때문에 어른들도 아이들도 이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에서 장난감들은 한때 그들의 전부였던 주인과의 관계가 끝난다. 심지어 그 과정을 여러 번 겪게 된다.

인간의 관계에서도 너무나 사랑했던 연인이 다른 사람이 더 좋다며 떠나가기도 한다. 엄마가 전부였던 아이들이 커서 문 닫고 친구와의 채팅에 몰두한다. 인생의 우산이었던 부모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백년을 해로한 부부도 한사람은 먼저 죽어서 이별한다. 이렇듯 영화는 시간이 흐르며 변하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별의 순간이 왔다고 해서 꼭 누군가의 마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인 건 아니다. 어떤 이별은 그저 그들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찾아온다.”라고 평을 남겼었다.

그렇다. 이별했어도 그 관계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큰 한 부분으로 남는다. 에밀리의 마음에 제시가 남아있었던 것처럼, 좋은 시절은 지나갈 뿐이지 없어지지 않는다.

버즈가 마트에 있던 수많은 복제품을 보며 실망했을 때 어린 왕자가 지구에 와서 장미 꽃밭을 보며 자신의 장미가 수천 송이의 장미 중 하나였음을 알고 실망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나 앤디에게 발바닥에 자기의 이름을 쓴 우디는 하나다. 우디도 버즈도 세상에 하나뿐이고 어린 왕자의 장미도 세상에 하나뿐이다. 제시도 에밀리와 앤디와 보니에게는 하나뿐인 대체불가능한 장난감이다. 마음을 주고 자신의 이름을 새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이다. 아무리 새로이 업그레이드되어 스스로 날 수 있는 새로운 버즈가 나와도, 앤디의 유일한 버즈는 날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날아다니며 우주를 구원하는 줄 아는 과대망상의 달인 버즈이다. 비록 시간이 흘러 이들과 이별했더라도 그 사랑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이 영화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이것이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상이 옆에 없어도 그들이 서로 사랑했던 순간이 확실히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이별이 있었다는 공통적인 이 서사가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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