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간장과 평양냉면
오래전 본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한 커플의 대화다. 집을 리노베이션 하는 중이라 인테리어 자재를 파는 마트에서 부부가 바닥 마감재를 고르고 있다. 진짜 목재 마루와 무늬만 목재인 합성 마루의 가격 차이가 만만치 않자 남편은 겉으로 보기에 똑같으니 가격이 싼 합성 재료로 하자고 제안한다. 이때 아내는 가짜가 진짜인 척하는 걸 참을수 없다며 비싸도 진짜 목재를 선택하겠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찔린 남편은 갑자기 마트 한복판에서 큰소리로 자신이 바람피우고 있다는 고백을 한다. 무늬만 부부였던 이들은 가짜 사랑을 끝낸다. 마트에서 큰소리로 이런 고백을 하는 상황이 생뚱맞아서 웃기기도 했지만 마루 재질을 통해 진실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에 감탄하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30대에 친구들과 남대문 시장에서 가품 가방을 파는 곳에 들러서 가방을 하나씩 샀다. 수백만 원 하는 진짜 가방을 사기는 그렇고 잘 만든 가짜를 사서 들고 다니자고 의기투합했다. 결과는? 한 번도 들지 못했다. 평소에 들기에는 로고가 너무 튀었고, 중요한 자리에 갈 때는 내키지 않았다. 비싸지 않아도 국산 적당한 브랜드 가방은 당당히 들었던 반면, 명품인 척하는 가품 가방을 들 수가 없었다. 남들이 아무리 못 알아봐도 내가 알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거짓말은 평생 남에게 들키지 않을지라도 스스로 그것이 거짓임을 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고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숯불구이는 잘 먹는 편이다. 그런데 언젠가 뉴스에서 일부 식당에서 숯불구이 맛을 내는 액체 화학물질을 넣고 요리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직접 숯불에서 구운 고기 아니면 잘 믿지 않는다. 누룽지 사탕도 누룽지 맛을 내는 물질을 첨가하고 바나나 우유도 딸기 우유도 멜론 아이스크림도 다 그 과일이 아니라 향을 입힌다. 나도 학창 시절 기운 떨어질 때 많이 먹었지만 진짜 바나나와 딸기와 멜론보다 더 그 맛을 내는 화학물질이 섬뜩하다. 음료수에 설탕은 피하고 싶지만 단맛은 포기하지 못하니 ‘제로’라고 쓰고 감미료를 넣는다. 확실히 단맛은 나지만 수상한 단맛이다.
나의 시어머니는 평생 장을 직접 담그셨다. 결혼한 이후 내내 간장과 된장을 만들어 주셔서 당연히 받아먹었다. 좋은 콩으로 메주를 쑤고 매달아 놓으셨다가 소금물을 부어 장을 담그셨다. 이렇게 만든 장은 신기하게 설탕을 넣지 않아도 간장에서 달큼한 맛이 났다. 된장도 국을 끓이면 구수한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우리 집안의 시그니쳐 장은 끝났고 슈퍼에서 장을 사 먹게 되었다. 사 먹는 간장 된장은 적당히 조미료 맛이 나는 제품이다. 공정도 자연적인 발효가 아니라 촉매를 넣고 짧은 시간 발효시킨 것이다. 또 아무리 돈을 더 주고 화학간장이 아닌 양조간장을 사도 어머니가 만드신 장의 깊고 담백한 맛이 나지 않는다. 한국 음식의 기본양념이 장인데 이것이 흔들리니 은은한 한국 음식이 자극적인 맛으로 바뀌었다.
우리 부부는 여름이면 평양냉면을 즐겨 먹는다. 우리 집 근처에 유명한 평양냉면집이 있고 점심시간이면 줄을 서서 대기했다가 먹는다. 처음 평양냉면을 먹어보면 값은 비싼데 국물은 밍밍하고 슴슴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손님이 오셔서 냉면 맛집이라며 모시고 가서 먹었을 때 그분의 표정은 별로 흡족해 보이지 않았다. 평양냉면 육수를 내는 과정은 재료비도 만만치 않지만 만드는 시간과 드는 정성이 상상을 초월한다. 이 정도로 공을 들여도 국물맛이 슴슴하기 마련인데, 고기 맛을 내는 조미료를 넣고 뚝딱 육수를 만든 냉면집의 맛은 강렬하다. 그러나 처음에는 평양냉면이 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다가도 나중에는 그 값을 받을만하다고 인정하게 되고 두고두고 생각나는 본연의 맛이라고 느끼게 된다.
요즘같이 젊은 사람들이 바쁜 시대에 장을 담그거나 국을 직접 끓여 먹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물건은 가짜를 구별하기 쉽지만 음식은 쉽지 않다. 검정 액체는 다 간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것은 그냥 조미료를 혼합해 놓은 가짜 간장인 것이다. 치즈도 생우유로 만들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릭 요거트도 유청을 빼고 꾸덕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전분과 젤라틴을 첨가해서 질감을 비슷하게 만든 것들도 있다. 바쁜 일정과 경제적 조건 때문에 때로는 타협해서 최고가 아닌 음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그것의 한계나 품질을 알고 먹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 속지는 말아야 한다. 이것이 작은 글씨여도 제품의 재료를 적은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어떤것의 진위를 모른다면 거짓말을 진실인 줄 알고 평생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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