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좋았는데, 어쩌면 내가 망쳐버린 건지모른다.

빌미를 제공하다.

by관돌

'빌미를 제공하다'라는 말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대부분 의미를 잘 알겠지만, '빌미'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한 계기나 핑계 / 재앙이나 탈 따위가 생기는 원인)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의미를 바탕으로 '빌미를 제공하다'라는 문장이

내포하는 뜻은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원인이나 구실, 또는 핑계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썩 좋은 의미가 담긴 말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누군가와 관계를 정리했다.

아니, 솔직히 내가 정리를 한 건지 당한 건지도

판단이 서질 않는다.

남녀문제가 아닌 온라인 게임 동료 관계의 일이다.


한 때는 나름 친한 사이였지만,

이제는 서로 아는 체도 하지 않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솔직히 지금 심정은 한 편으론 후련하기도 하고,

또다른 한 편으론 섭섭한 감정도 생긴다.


그렇다고 이 섭섭함 때문에 다시 그 관계를 인위적으로

엮어 나가긴 싫다.


이 일이 있은 후, 꽤 많은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관계에 대해서...


이 전까지는 낯선 사람, 아니 새로운 구성원이나

동료를 만나면 나름의 방식으로 친해지기 위해 보이지

않는 애를 써 왔었다.


물론 남들 눈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겠지만,

나에겐 다르다. 먼저 말을 걸거나, 밥을 같이 먹거나,

대화에도 참여하는 행동들...

이 모든 행동들이 내게 있어선 엄청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렇게라도 해서 누군가와 친해지려고 했었다.

최대한 편하게 대해주기도,

배려도 많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이 어쩌면

일부 사람들과의 관계 악화에 어떠한

빌미를 제공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미지를 '착한 사람?', '큰 반응 안 보이는 사람',

'그냥 웃고 넘기는 사람?'이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아니 그런 모습으로 보여줘 버렸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누군가는 '편안한 상대'에서

점점 '만만한 상대'로 대하는 습성을 보이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어! 이게 아닌데... 만만하게 봐 달라는 의도는 없었는데..'

'그냥 편하게 지내보자는 건데...'


왜 편안함을 만만한 것으로 해석하는 걸까?


이렇게 나의 의도가 무색해져 버리는 순간...

나 또한 그 때부터 그들에 대한 감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편안함에서 불편함으로...다시 불쾌감으로...


분명 좋은 사이였는데...

이런 감정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니 관계 또한,

어색함이 감돌다가 점점 낯선감으로 변하게 된다.


마치 처음 본 사이 마냥... 모르는 것처럼.


애초에 나 또한 적당한 선을 긋고 대했다면

이런 상황까지 치닫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슬롯적 관계가 지속될 수도 있었고.

무시나 비난, 놀림을 당한다는 생각조차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누군가를 만날 일이 생기면,

가급적 편안한 인상을 심어주려 노력하지 않는다.

아니,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불편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쓴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저 사람은 좀 대하기 어렵고, 재미도 없고,

말 수도 없는 사람... 좀 불편한 사람인 것 같은데...'

라는 인상을 심어주면 나면...


그들은 일부러 내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또한 예의를 차려주고 불편하면서 어색하게 대해준다.

물론 나 또한 최대한 예를 갖추고 그들을 대한다.


정말 슬롯적인 관계에서 맺은 동료처럼.


어느 순간부터 온라인 게임에서 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낼 수

있는 친구 같은 동료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분명한 이유는 내가 마음을 열지 않는 게 첫 번째이고,

다음으로 그렇게 마음을 열 만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더 이상 새로운 관계 맺기에 대한 열망이나 기대감도

없기에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안 그래도 넉넉하지 못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데..

나중에 주변을 돌아보면 과연 누가 남아 있을까?


많이 남아 있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도 없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솔직한 심정이다.


분명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의도로 시작한

관심과 행동이었지만,

이러한 관심과 행동이 좋았던 관계마저도

깨트릴 수 있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나니

관계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함을 알게 된 것 같다.


정답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찾은 나만의 개똥철학 같은 답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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