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밥도 안 되는 온라인카지노가 사람을 데려온다.

(밀양역까지 데려온 댓글 하나)

by류정uk



45년을 타국에서 살았다.

영어는 겨우 패치했는데, 눈치는 아직도 체험판이다.

업데이트 알림은 뜨지만 설치 버튼이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남들이 다 웃고 난 뒤에야 따라 웃는 사람이었다.

농담이 지나간 자리에서 혼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다가,

한참 뒤에야 "아…" 하고 멈춰 서곤 했다.

어느 날 영국 온라인 게임 동료가 지나가며 말했다.

"오늘 날씨 장난 아니네. 비에 떠내려가겠어~"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구명조끼를 사야 하나, 고무보트를 알아봐야 하나,

집 구조상 어디로 빠져나가야 할지까지

사흘 밤낮을 고민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게 영국인들이 하루에 세 번씩 하는 인사라는 걸.

그런 어긋남이 45년 동안 쌓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영원한 바깥사람'이 되어 있었다.

웃으며 넘긴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이유 없이 서러워지는 날이면 혼자 숨어 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하루를 살았다.

출근은 늘 잘했다. 감정은 못 맞춰도 시간은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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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처음으로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올렸다.

어차피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그 예상은 그대로 맞았다.

조회수 3.

그중 2는 내가 실수로 누른 것이고,

나머지 1은 지나가던 봇이

"이건 뭐지?" 하고 눌렀다가 떠난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도 화면은 고요해서

와이파이가 끊긴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황무지에 댓글 하나가 달렸다.

김별 작가였다.

짧은 문장이었는데,

내 속말을 정확히 알아들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 댓글을 두 번, 세 번, 다섯 번…

거의 외울 때까지 읽었다.

그 뒤로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회계사, 시인, 농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내 글 아래에 오래 묵혀둔 마음과 실패를

살며시 내려놓고 갔다.

그때 처음 알았다.

글은 혼자 쓰지만, 머무는 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

몇 달 뒤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때,

김별 작가는 나를 만나기 위해 밀양역까지 왔다.

귀국하면 사람 얼굴이 잘 구분되지 않아서

역 앞에서 전혀 모르는 분께 "작가님?" 하고 인사할 뻔했다.

개찰구 너머에서 손을 흔들던 그녀가 말했다.

"글이랑 똑같이 생기셨네요."

그 한마디에 45년 묵은 이방인의 어색함이 녹아내렸다.

인증서도 아닌데, 실물이 글과 같다는 확인을 받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제주로 갔다.

오름을 하나 더 오르자는 제안에

나는 무릎을 핑계로 카페에 눌러앉았지만,

저녁에 나란히 마신 커피 한 잔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댓글 하나가

나를 현실의 온기 속으로 데려왔다.

⸻

그날 이후 사람을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글에서 만난 이들의 사정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니,

글 밖의 사람들도 예전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계약서보다 그 뒤에 서 있는 얼굴을 먼저 보게 됐다.

그 버릇은 영국에서 20년째 해온 임대업에도 옮겨왔다.

이제는 집의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문제인지 대강 안다.

가끔은 의사보다 낫다는 소리를 듣지만,

아무도 병원 대신 나를 찾지는 않는다.

어느 날 세입자가 창밖 학교 담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라면 아이 학교 끝나고 걸어서 데리러 갈 수 있겠네요."

서류에 적힌 '단기 임대 6개월'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계약과 상관없는 말이었지만, 그 문장이 오래 남았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

다시 출발선에 선 사람.

아직 이 도시에 뿌리내리지 못한 사람.

온라인카지노에서 스쳐 간 삶들이

미묘한 이해의 방식을 다시 가르쳐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침이 덜 무거워졌다.

나를 바꾼 것은 글이 아니었다.

그 글 사이를 오가던 사람들이었다.

⸻

오늘 김별 작가에게 메시지가 왔다.

"구독자도 많이 생기셨고, 라이크도 많이 받으시네요. 축하드립니다."

나는 그 문장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믿기지 않아 라이크 수를 두 번 확인했다.

첫 번째는 실수일까 봐,

두 번째는 진짜인지 보려고.

숫자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가

흔들리던 마음을 붙들어주었기 때문이다.

45년 동안 타국을 겉돌던 삶 끝에,

나도 마음 편히 앉을자리를 찾았다.

온라인카지노는 통장을 채워주지 않는다.

오히려 커피값으로 조금씩 비워간다.

하지만 온라인카지노는 사람을 데려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돈도 안 되고 밥도 안 되는 이 공간에서,

사람 하나 만나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큰 기적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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