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떼만 남은 섬에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뉴스마다 도배되는 끊이지 않는 지구촌의 전황들을 보고 있자니 내 칠순의 머릿속도 조금은 삐딱해진 모양이다.
이번엔 축구를 보다가 저 멀리 남쪽 바다, 포글랜드 (Falkland Islands, 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Malvinas)의 묵은 전쟁 이야기까지 끄집어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2주 전, 7월 15일, 월드컵 준결승이 끝났을 때다.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를 2대 1로 이겼다. 그런데 오래 남은 것은 경기 내용보다 종료 직후의 장면이었다.
휘슬이 울리자마자 몇몇 선수들이 플래카드를 펼쳤다.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의 것."
공교롭게도 바로 전날, 정치적 메시지를 금지한다는 공지가 나왔었다.
그러니까 이건 대충 이런 느낌이다. 금연 표지판 바로 아래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CCTV를 똑바로 바라보며 라이터를 켜는 사람. 심지어 한 번에 불이 붙지 않자 다시 한 번 켜는 사람.
무지가 아니다.
실수도 아니다.
신념이다.
다만 그 신념이 '말비나스'라는 이름의, 140년 넘게 이어진 영토 분쟁을 향하고 있을 뿐이다.
ㅡㅡㅡ
그 장면을 보다가 문득 친구 Peter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하고 있던 해, 포클랜드 전쟁이 시작됐다. 뉴욕의 어느 고급 만찬 자리였다.
턱시도와 좌석 배치표가 있었고,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척하면서 사실은 정치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영국에 전쟁 터졌어, 우리나라가 침공당했다고!"
그 자리에 있던 영국인은 여섯 명.
자신감이 넘쳤고, 좋은 교육을 받았고, 턱시도까지 완벽하게 갖춰 입고 있었다. 사립학교 이력만 합쳐도 수백 년은 될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Peter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방 안이 잠깐 멈췄다.
포크가 공중에서 멈췄고, 와인잔도 더는 기울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 아주 합리적인 질문을 던졌다.
"… 그런데 포클랜드가 정확히 어디야?"
한 명은 스코틀랜드 근처라고 자신 있게 말했고,
한 명은 아프리카쯤일 거라고 했고,
세 번째는 "호주 쪽 아닐까?"라고 했다.
멀고, 영국 식민지 같아 보인다는 게 논리였다.
정답률은 0퍼센트였다.
전원 각자 다른 대륙을 가리켰다.
결국 누군가 웨이터를 불렀다.
"지도 있나요?"
놀랍게도 있었다.
정말로 있었다.
레스토랑에 지도라니. 디저트 메뉴 옆에서 튀어나온 것도 어쩐지 우아했다.
한참을 뒤진 끝에, 겨우 색인을 거쳐 찾아낸 섬은 남극 가까이에 찍힌 아주 작은 점 하나.
다들 그 점을 손가락으로 짚은 채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질문이 나왔다.
휴양지 타임셰어를 계약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자기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닫기 시작한 사람의 어조로.
"…그런데 이게 왜 우리 거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스테이크는 식기 전에 나왔고, 전쟁은 시작됐지만, 디저트는 예정대로 나왔다.
삶도 그 뒤로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됐다.
ㅡㅡㅡ
그건 투자은행장으로 은퇴한 Peter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영국인에게 포클랜드는 지도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먼 해외령일 뿐이다.
반면 많은 아르헨티나인에게 말비나스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끝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 재생 중인 이야기다.
ㅡㅡㅡ
몇 년 뒤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갔다.
거기서는 상황이 정확히 반대였다.
이번에는 우리가 지도를 찾아야 하는 쪽이었다.
우리는 평화 단체 Servas를 통해 아르헨티나 저널리스트 부부와 인연을 맺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서 함께 먹고, 자고 하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그러면 전쟁도 없어지리라는 믿음에서 모인 공동체다.
그 이론은 아마 다른 많은 집에서는 잘 작동했을 것이다.
다만 그 집에서는, 아직 시험 중인 듯했다.
결국 우리는 손님 접대에 더 적합하다는 이유로 그의 아버지 집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판사였다.
판사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듯한 진지함을 온몸에 두른 사람이었다. 누군가 언젠가 그에게 '위엄'이라는 단어를 딱 한 번 설명해 준 뒤, 그는 그걸 단 한순간도 내려놓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보였다.
Peter가 영국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공기 자체는 그대로인데, 대화의 온도만 몇 도쯤 내려간 느낌이었다.
판사가 Peter를 바라봤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말했다.
"Hola."
그게 전부였다.
문장은 한 단어였지만, 뜻은 한 페이지 분량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스페인어를 3년간 독학했다. 물론 지금도 'Hola'밖에 못한다.
식사 중 결국 그 이야기가 나왔다.
"말비나스는 우리 땅입니다."
조용하고 단정한 어조였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마치 자신의 생년월일이나 출생지를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우리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빵이나 하나 더 청했어야 했다.
하지만 Peter는 멈추지 않았다.
"아마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가 인기가 없어서… 관심을 돌리려고 전쟁을…"
문장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사실 끝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그 말은 테이블 위에 툭 떨어졌고, 남은 식사 시간 내내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무도 치우지 않는 접시처럼.
Peter는 지금도 후회 중이다. 입이 뇌보다 반 박자 빨랐던, 인생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고.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틀린 집에서,
틀린 사람 앞에서,
아주 틀린 방식으로 나왔다는 게 문제였다.
제국주의의 유산이란 대개 그렇다.
가해자의 후손들에게 그것은 '지도의 구석에 찍힌 명분 없는 점'이나 냉소적인 농담거리일 뿐이지만, 피해를 입었거나 그 상처를 떠안은 이들에게는 '존엄과 한의 문제'다.
그날 이후 대화는 눈에 띄게 짧아졌다.
남은 여행 내내 그랬다.
ㅡㅡㅡ
결국 우리는 포클랜드에 직접 갔다.
우리는 긴장된 풍경을 상상했다.
기념비와 철조망, 그리고 역사의 잔향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거기엔 양이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양 떼가 있었다.
언덕 하나를 넘으면 또 양이 있었고, 그다음 언덕을 넘어도 다시 양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인간들이 그 땅의 소유권을 조용히 양들에게 넘겨버린 것만 같았다.
영국군도 있었다.
그들은 친절했고, 솔직했다.
"여기선 할 일이 별로 없어요."
표정은, 그 말과는 조금 달랐다. 관광객 들인 우리를 만나 드디어 할 일이 생겼다는 얼굴이었다.
풍경만 놓고 보면, 대머리 두 사람이 빗 하나를 두고 싸웠다는 식의 냉소가 왜 나오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건 풍경 앞에서만 가능한 농담이었다.
그 전쟁으로 약 900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바람 부는 초원과 그 숫자는 좀처럼 같은 장소에 속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풍경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
양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자기들은 이 소동에 엉겁결에 끼어든 것뿐인데 왜 계속 상징처럼 불려 나와야 하는지, 조금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ㅡㅡㅡ
뉴욕에서는 아무도 그 섬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모두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섬은 어느 쪽 이야기에도 별 관심이 없는 얼굴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풀과 바람과 양 떼만 남은 채로.
그래서 축구 플래카드 하나면 충분하다.
전쟁을 다시 불러내는 데는.
여권도 필요 없고, 지도도 필요 없다.
90분이면 된다.
어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저 잠시 경기장 밖으로 밀려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어디선가 비슷한 이야기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