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그 여름에 진 빚에 대하여

by류정uk


(이 글은 온라인카지노 작가 해암(海巖)님의 「(詩) 죽음의 강, 낙동강」을 읽고 받은 충격과 감명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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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강바람이 불면,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바람을 맞는다. 그 바람이 어떤 여름을 지나 나에게 왔는지, 너무 오랫동안 나는 모르고 살았다.

낙동강에 내가 지고 있는 빚을, 그 사실을, 나는 오늘 이 글을 읽으며 절실하게 깨닫는다.


고향 밀양을 떠올리면 언제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강변 마을이 먼저 떠오른다. 여름이면 강바람이 더위를 밀어내고, 겨울이면 낮게 깔린 물안개가 마을을 고요히 감싸던 곳. 그곳은 전쟁과는 가장 먼 풍경이였다. 교과서 속 ‘낙동강 방어선’은 시험에 나오는 지명일 뿐, 내가 나고 자란 땅의 이야기로는 좀처럼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해암 님의 글 속에서 낙동강 방어선의 지도를 마주한 순간, 무언가가 달라졌다.


창녕과 영산, 마산으로 이어진 치열한 전선. 1950년 여름, 낙동강은 대한민국의 존립을 떠받친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그 강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서로를 겨누던 최후 전선의 붉은 선이, 바로 내 고향의 등 뒤에 그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만약 그 방어선이 무너졌다면 부산이 먼저 흔들렸을 것이고, 밀양 또한 그 운명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도 위의 붉은 점선 하나가, 이렇게 시리도록 개인적인 의미로 다가올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여름을 버텨낸 사람들 가운데에는 열일곱, 열여덟의 학도병들도 있었다.


교실에 앉아 바카라을 읽고 미래를 꿈꾸어야 할 아이들이 총을 들었다. 참전 전, 부모에게 남긴 짧은 편지 한 장.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한 아이들. 누군가는 적 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게 막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누군가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이 지켜낸 것은 단지 강 하나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고향이었고, 누군가의 가족이었으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의 내일이었다.


그 내일 속에, 나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얼굴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고, 자유롭게 생각하며,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그해 여름 누군가가 대신 감당한 죽음과 두려움 위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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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늦은 나이에 영국에서 대학 입학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역사를 제대로 배웠다.


영국인 선생님은 자국의 영광만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와 노예무역,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랍의 땅을 수탈하며 제국을 세운 역사까지 숨김없이 가르쳤다.

자신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어두운 면을 외면하지 않는 그 태도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대체로 자랑스러운 이야기들이었다. 60/70 년대 독재정권 시절의 주입식 교육 속에서 역사는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할 서사였지, 스스로 질문하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대상은 아니었다. 시험을 위해 ‘낙동강 방어선’이라는 말을 달달 외웠고, 대수(對數)와 주기율표(週期律表), 처럼 머릿속 한구석에 넣어두었다가 금세 잊어버렸다.


남의 나라에서 배운 새로운 역사 는 내 역사를 바라보는 기준을 다시 세웠다. 미화도 냉소도 내려놓고, 가능한 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낙동강 방어선 앞에서는 냉정한 거리 두기가 되지 않았다.


이것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영웅담이 아니었다. 열일곱, 열여덟의 아이들이 실제로 총을 들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실제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희생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어떤 수사나 미화 없이도 충분히 무겁고 또렷했다. 만약 그 여름이 없었다면, 내가 영국까지 건너가 낯선 언어로 역사를 다시 배울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 사실 앞에서, 비판도 냉소도 잠시 멈춘다. 그저 고개를 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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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은 그해 여름 죽음의 강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끝내 삶을 지켜냈다.


나는 그 강가에서 태어나 아무것도 모른 채 자랐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그 강이 내게 얼마나 큰 빚을 남겨두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그 빚을 갚을 방법은 없다.

다만 잊지 않는 것.

그들의 희생 위에 놓인 오늘을, 오래 기억하는 것.


올가을 밀양에 가면, 강가에 서서 이름 없는 그 얼굴들을 향해 잠시 묵념을 올릴 것이다.

내가 평생 갚지 못할 빚 앞에서 끝내 지킬 수 있는, 가장 작은 예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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