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자격도 없는 사람이 제일 먼저 와 있었다
가족들은 아무도 안 간다고 했다.
아들이 셋이나 있는데, 셋 다 고개를 저었다. 살아 있는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다들 현명한 선택을 했다.
나는?
현명하지 않은 쪽을 골랐다. 늘 그렇듯, 이게 내 인생의 패턴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 갔다.
누구냐고?
이미 돌아가신 전 시어머님의 여동생. 지금의 나와는 법적으로도, 혈연으로도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 호적에도 없고, 피도 안 섞였고, 따지고 보면 이 집안과는 완전히 남이다. 다만 영국에 온 이후 40년 동안 이어온 인연 - 그것 하나뿐이다.
그런데 아들 셋은 집에 있고, 나는 여기 영안실에 서 있다.
인생이 웃긴다. 아니, 내가 웃긴다.
울 자격도 없는 사람이 제일 먼저 와 있었다.
자격 심사를 했다면 1차에서 탈락했을 텐데.
⸻
입구에 문지기가 있었다.
배가 풀때기처럼 불룩한 아저씨가 뚝딱 판 같은 의자에 눌러앉아 나를 올려다봤다. 그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또 왔네, 산 사람이.
이 아저씨는 매일 여기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할까. 인생무상? 아니면 점심 메뉴? 아마 점심 메뉴일 것이다.
나는 괜히 주머니를 뒤졌다. 입장권이라도 찾는 것처럼.
어른 한 장이요. 편도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멈췄다.
⸻
관이 너무 작았다.
그렇게 크게 보이던 분이. 방 안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던 분이. 반으로 줄어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죽음이란, 사람의 85년을 이 작은 나무 상자 하나로 요약해 버리는구나.
우리 인생, 결국 이케아 제품이었나.
누군가 옷을 아주 예쁘게 입혀 놓았다. 손에는 매니큐어까지. 살아 계실 때와 똑같은 색으로, 곱게 칠해 가지런히 모아 두었다.
그 손을 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죽어서도 단정한 사람.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에게 예의를 지킨 사람.
역시 Gina 이모답다.
나는 살아 있으면서도 이 정도 단정함은 못 된다. 괜히 반성했다.
그리고 발을 봤다.
구두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말년에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빼딱 구두는 절대 벗지 않던 분. 삐걱삐걱 걸으면서도 발끝만은 언제나 반짝이던 사람.
그 구두가 관 속에서도 그대로였다.
가지런히. 빛나게.
아, 이분은 저 세상 가서도 구두 신고 걸어 들어가셨겠구나.
천국 입구에서도 지팡이를 휘저으며, 구두 신고, 고개 빳빳이 들고 들어가셨겠지. 천사들이 길을 비켰을 것이다. 분명히.
그런데.
구두 옆에 맥주캔이 있었다.
네 개의 맥주캔이 나란히, 구두만큼이나 단정하게 누워 있었다.
누가 넣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을 아는 사람이 넣었다는 건 안다. 85년 동안 무엇을 사랑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올리는 것보다, 번듯한 만장 문구 하나 적는 것보다, 조용히 캔 네 개를 꺼내 구두 옆에 눕힌 그 사람이 - 이 세상에서 이모님을 가장 잘 번역한 사람이다.
구두와 맥주캔.
품위와 호방함.
단정함과 통쾌함.
이 두 가지가 한 관 안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아, 이게 이 사람이구나.
85년을 이 두 가지로 살았구나.
어떤 비문도, 어떤 추도사도 이 장면보다 정확할 수는 없겠다.
저 세상 가는 길에 목이 마르실까 봐.
혹은 - 저 세상에서도 한잔 하실 수 있게.
천국 입구에서 베드로에게 캔 하나 건네는 이모님.
베드로가 당황해서 받아 들었을 것이다.
⸻
나는 그 손을 만져보고 싶었다.
차마 못 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 단정함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아서. 나 같은 사람이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다. 호적도 없고 자격도 없는 사람이 뭘 만져.
얼굴은 보지 않기로 했다.
한 번 슬쩍 봤는데, 석고 같았다. 완벽하게 굳어버린 얼굴.
사진은 위에서 전체만 찍었다. 얼굴은 빼고.
새벽 세 시에 울면서 깨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내 수면을 소중히 여긴다.
⸻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꽃 향기가 진했다. 너무 진해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꽃이 이 방에 모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꽃으로 둘러싸인 미이라 하나.
구두 신고.
맥주캔 옆에 두고.
아, 이게 꽃 박물관이구나.
영혼은 이미 오래전에 떠났다. 여기 남은 건 85년 동안 쓰다가 반납한 몸 하나.
그렇게 화려했던 사람이, 그렇게 강인했던 사람이, 결국 우리 모두와 똑같이 이 작은 상자 안에 요약되었다.
반납 기한도 없이 빌려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반납.
연체료도 없다.
그나마 다행이다.
인생무상.
이 네 글자를 이렇게 실감한 적이 없었다.
슬프냐고?
슬프지 않았다.
슬프다기보다는, 피식 웃음이 났다. 무례한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모님이라면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까짓 거.
그리고 아마 내 차림새를 한 번 훑어보고는 덧붙였겠지.
근데 너 신발이 그게 뭐니.
⸻
나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나왔다.
배불뚝이 문지기 아저씨는 여전히 뚝딱 판처럼 앉아 있었다. 오늘도 수고 많으시겠네요, 마음속으로 인사를 했다.
매일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인생을 어떻게 볼까.
아마 나보다 훨씬 담담하겠지.
아니면 퇴근하고 펍에서 맥주 한 파인트 하겠지.
그것도 맞는 방법이다.
밖으로 나왔다.
햇빛이 너무 밝았다. 눈이 부셨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 인생,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위로가 됐다.
⸻
그리고 오늘, 장례식장에서 그 아저씨를 다시 봤다.
영구차 핸들을 잡고 있었다.
아.
이 분이었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모시는 사람.
영안실 입구에서 맞이하고, 마지막 길까지 직접 운전하는 사람.
배불뚝이로 뚝딱판에 눌러앉아 산 사람들을 올려다보던 그 눈빛이 - 사실은 이런 눈빛이었던 거다.
나는 다 알고 있어.
처음도 봤고, 끝도 볼 거야.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이 동네에서 인생을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 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매일 이 일을 하면서도 저렇게 태연하게 핸들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아마 점심 메뉴를 고민하면서.
배불뚝이 아저씨.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