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는 적히지 않는 것들

(로켓 엔지니어의 진공청소기)

by류정uk


폴은 약속에 한 시간이나 늦게 나타났다.


"아래층 할머니 댁에서 물이 샜어. 고쳐드리고 왔어."


사과도 아니고 설명도 아닌, 그냥 경위서였다.



나는 폴을 20년 넘게 알고 지냈다.

늘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그는 말했다.


"엔지니어야."


그게 다였다. 나는 20년 동안 더 묻지 않았다.



얼마 전에서야 나는 그가 로켓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오후,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사실이 툭 튀어나왔다. 나는 그를 돌아보며,


“잠깐, 잠깐, 뭐? 당신이 로켓을 설계하는 과학자라고?”


폴은 어깨를 으쓱했다.


"엔지니어."


나는 잠시 생각했다. 20년이었다.

나는 한 번도 더 안 물어봤고, 그는 한 번도 더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예의 바른 사람들이었다.




폴은 예전에 내 바로 맞은편 아파트에 살았다.

지금은 내가 이사를 와 조금 멀어졌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여전히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이다.

주말마다 먼 길을 달려 부모님이 남기신 고향집을 돌보고, 평소에도 동네 어르신들의 자잘한 불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로켓을 설계하는 사람의 주말치고는 꽤 평범하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난 또 다른 이웃의 베키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그 장례식에 갔었다. 가족도, 돈도, 곁에 남은 사람도 거의 없던 자리였다.


마지막 몇 달 동안, 무언가 필요할 때마다 베키 할머니는 폴을 불렀다.


폴은 왔다.


매번.



그리고 세상을 떠나며, 그녀는 유언장에 단 하나를 폴에게 남겼다.


"진공청소기"


나는 웃음이 났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그것이 폴에게 너무 어울리는 유산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가 가진 것 중 가장 새것이고, 가장 좋은 물건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마 집에서 제일 시끄러운 물건이기도 했겠다.


폴은 지금도 그 청소기를 쓰고 있다.


"좋은 거야."


그게 전부였다. 로켓 엔지니어의 유산 평가였고, 스펙 설명은 없었다.




나는 로켓을 생각했다. 나는 진공청소기를 생각했다.

둘 다 폴 같았다.


로켓을 설계하는 사람이 중고 청소기에 진심인 것이.


우주로 무언가를 쏘아 올리는 일과,

누군가의 집 바닥을 묵묵히 닦아주는 일.

폴에게는 그저 해야 할 일이었다.



삶은 흔적을 남긴다.

어떤 흔적은 조용한 방 한켠에서 잘 돌아가는 진공청소기로 남는다.



(청소기는 지금도 잘 돌아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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