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있잖아

(오늘, 한 사람의 시대가 끝났다)

by류정uk


그녀는 늘 곁에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설명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인연도 있다. 혈연도, 같은 땅에서 뿌리내린 것도 아닌데. 언제부터였을까. 그 사람이 내 일상의 결 사이로 조용히 스며들어 있었다.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얼굴로.


오늘 아침, Gina 이모가 세상을 떠났다. 먼저 떠나신 시어머님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들어서는 것만으로 공간을 장악했다. 말 한마디 없이도. 언제나 단정하고, 언제나 품위 있었다. 그건 단순한 멋이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예의였고, 타인에 대한 깊은 존중이었다. 그녀 곁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세상 앞에 서야 하는지.


그리고 무언가 해야 할 때, 그녀는 그냥 했다.


영국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이웃과의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Gina 이모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는 조용히 나타났다.


차분한 걸음으로 현관에 들어서 상황을 살피더니, 필요한 말과 필요한 행동을 했다. 혼자서 모든 것을 정리했다. 그리고 돌아서며 툭 던지듯 한마디를 남겼다.


“그까짓 거. 나 있잖아.”


그 짧은 말이 어떤 긴 위로보다 깊이 가슴에 박혔다. 든든하고, 당당하고, 따뜻했다.


혼자가 된 후에도 그녀는 내가 여전히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한 가족으로.


영국 북부 더비셔로 올라갈 때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늘 그녀의 집이었다. 그 방문들이 쌓일수록, 그녀는 말없이 나를 가르쳤다.


돌아오는 길이면, 그녀는 언제나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차가 골목을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백미러 속에서 작아지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슴에 안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가르침이었다.


조용히 해결하고, 드러내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 그냥 나타나는 것.


그 모습이 내가 이 나라에서 나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되었다. 잘하되, 조용히. 말보다 먼저 행동으로.


강하면서도 그 강함을 결코 내세우지 않는 사람.


그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세 아들과, 그녀를 알았다는 것만으로 삶이 달라진 수많은 사람들을 남기고, 그녀는 평온하게 떠났다.


한국말에 ‘정(情)’이라는 말이 있다.


번역할 수 없는 그 단어.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쌓이다가, 한 번 생기면 떠나지 않는 것. 거리를 넘고 시간을 넘어서, 별말 없이 곁에 있어준 그 순간들 속에 오래도록 남는 것.


Gina 이모.

당신은 우아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지닌 사람이었다.

당신 곁에 있으면 누구나 조금 더 바르게 서게 되었고,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늘은 그냥, 그 이름을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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