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친구 순득이와 함께 크루즈 안에서 만난 타월 이야기)
배에 오르고 사흘쯤 지나, 붙잡고 있던 고국의 뉴스에서 겨우 눈을 떼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욕실이다.
비행기 화장실보다 조금 큰 공간에 변기, 샤워 부스, 세면대가 다 들어가 있다. 한국 아파트 기준으로 치면 신발장보다 작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진짜 놀라는 건 크기가 아니다. 타월의 숫자다.
온몸을 두를 수 있는 큰 Bath Towel, 그보다 작은 Face Towel, 손수건 만한 Hand Towel, 바닥에 까는 Foot Towel, 거기에 Bathrobe까지 두 벌.
샤워 한 번에 타월 다섯 개. 내가 씻은 건지, 빨래를 한 건지 모를 지경이다. 이 정도면 몸을 닦는 게 아니라 포장하는 거다.
나와 한 방을 쓰고 있는 고향 친구 순득이는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작은 Face Towel 하나만 들고 나온다.
결혼식이나 동창회 답례품으로 받던 바로 그 수건이다.
어딘가에 ‘제22회 숭진 초등학교 동창회 기념’이라고 새겨진 수건을 지금도 쓰고 있을지 모른다.
그걸로 얼굴도 닦고, 등도 닦고, 발도 닦는다. 수건 하나가 전신을 바카라임진다.
나도 다르지 않다. 작은 수건 하나면 충분하다. 물기를 대충 털고 잠깐 기다리면 몸은 알아서 마른다.
이게 절약인지, 아니면 그냥 몸에 밴 습관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집 안에 수도꼭지 하나 없이 자랐다. 동네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던 시절이다. 수세식 화장실도, 화장지도 없던 시절이다.
볼일을 보고 나면 각자 세대마다 쓰는 게 달랐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지푸라기, 부모 세대는 미군 물자로 들어온 밀가루 포대 종이, 우리 세대는 그나마 한 단계 진화해서 신문지였다.
신문지라도 쓸 수 있으면 다행이던 시절이다. 그 시간이 아직도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러니 이렇게 넘쳐나는 타월들 앞에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보기에는 좋지만, 괜히 많이 쓰면 어딘가 마음이 불편하다.
어느 날 내가 물었다.
“큰 타월은 왜 안 써? 돈을 더 내는 것도 아닌데.”
순득이가 담담하게 답했다.
“습관도 안 됐고, 솔직히 낭비 같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니까.
크루즈에는 ‘Behind The Scenes’이라는 투어가 있다.
승객들이 보통은 들어가지 못하는 창고, 주방, 기관실, 세탁실 같은 내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값도 꽤 나가는 편이다. 유람선의 뒷면을 보여주는 투어라고 할까.
세탁실은 처음 보면 신기하다. 엄청난 양의 타월과 시트들이 거대한 세탁기 속으로 들어갔다가 새것처럼 나온다.
하지만 그 깨끗함 뒤에는 또 다른 풍경이 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등에서 온 직원들이 창문 하나 없는 뜨겁고 답답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타월과 시트를 다린다.
끝없이 쏟아지는 세탁물과 씨름하면서.
거대한 다림질 기계가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와 눅눅한 증기 속에서, 나는 1분도 버티기 어려웠다.
훅 끼쳐오는 열기에 숨이 막혔다.
그 방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커다란 타월을 예전처럼 편하게 쓰기가 어려워졌다.
단골 덕분에 받은 무료 초대권을 이번엔 크루즈에서 만난 젊은 한국 여성에게 건넸다.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온 딸이었다.
모녀가 함께 크루즈를 탄다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은 아닌데, 이 딸은 엄마 손을 잡고 웃는 얼굴이 어찌나 해맑던지 보는 사람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와도 금세 친해져 한 식탁을 함께 쓰게 됐다.
투어를 다녀온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이제 저도 그 타월을 마음껏 못 쓸 것 같아요. 침대 시트도 갈아달라고 못 하겠고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젊은 사람이 이런 걸 느꼈다는 게, 어쩐지 반가웠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욕실 앞에 선다. 가지런히 접힌 타월들을 바라보다가, 그냥 작은 것 하나만 집어 든다.
그 세탁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우리가 갑판 위에서 바라보던 수평선이, 누군가에게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풍경일지도 모른다.
깨끗한 타월 한 장 뒤에,
보이지 않는 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