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바다 위에서 한국을 생각하다

by류정uk


한국을 떠난 지 45년이 됐다. 세월로 치면 거의 반세기다. 그런데도 한국 뉴스만 들리면 나는 아직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지금도 그렇다. 고향 친구 순득이가 한국에서 영국까지 나를 보러 왔다. 한 달을 함께 지내다, 마지막 열흘은 유럽 크루즈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근데 평소에는 사지 않는 비싼 인터넷을 배에 오르자마자 끊었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삼성 노사 문제가 자꾸 마음에 걸려서.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MSC 크루즈의 매그니피카호다. 승객만 수천 명, 승무원까지 합치면 거의 4500명이 함께 움직이는 작은 도시다. 밤이 되면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호텔처럼 반짝인다. 그런 풍경 속에서도 내 마음은 자꾸 한국으로 향한다. 영국에서 오래 살았고 생활의 터전도 이제는 그곳이지만, 한국 뉴스만 들리면 마음 한구석이 먼저 움직이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논리가 아니라 본능처럼 따라온다.


아마 내가 한국을 그렇게 쉽게 놓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지나온 시간들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미군 트럭 뒤를 따라다니며 떨어진 초콜릿을 주워 먹고 자란 사람이다. 전쟁의 가난과 허기를 몸으로 겪으며 컸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놀라운 건 유럽 바다 한가운데서 한국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 같으면 외국 크루즈 안에서 한국말을 듣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승무원들이 우리를 보면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어떤 이는 서툰 발음으로 "감사합니다"를 말하며 웃는다. 순득이와 나는 그때마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저 사람이 한국어를 배웠다는 사실보다, 배울 이유가 생겼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다.


객실 안으로 들어오면 또 다른 한국이 보인다. 벽에 걸린 텔레비전도 삼성, 손 안의 전화기도 삼성이다. 저 회사가 지금 안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 나는 저 로고를 한참 바라보았다. 잘 버텨줬으면 하는 마음이 말보다 먼저 올라왔다.


문득 순득이를 돌아본다. 한때 등에는 아이를 업고, 손에는 짜장면 배달통을 들고 뛰던 사람이다. 그 순득이가 지금 유럽 바다 위에서 나와 나란히 앉아 삼성 TV를 보고 있다.


미군 트럭을 따라다니던 아이와, 짜장면통을 들고 달리던 엄마가 - 여기까지 왔다.


우리만 온 게 아니라, 우리의 나라, 대한만귝도 함께 여기까지 왔다.


순득이와 커피를 마시며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젊을 때는 이런 세상 상상도 못 했지."


정말이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창밖에는 저녁 바다가 조용히 흘러간다.












작가의 이전글순득이의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