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 순득이를 생각하면 두 장면이 겹친다.
아이를 등에 업고 짜장면 배달통을 들고뛰던 사람. 그리고 국민학교 운동회에서 달리던 엄마.
이상하게도 그 둘은 내게 늘 한 장면이다.
한 사람이 생이 겹쳐지는 조용한 기록이다.
그녀는 늘 뛰고 있었다.
지금 그 순득이가 내 옆에 있다.
일흔이 되어 영국까지 와, 나와 함께 런던 거리를 걷고 있다.
나이 합은 굳이 세지 않는다.
키는 141cm, 나는 157cm.
나란히 서면 사람들은 한 번쯤 다시 돌아본다.
우리는 그저 웃고 지나간다.
설명하면 더 이상해지니까.
순득이는 결혼 후 10년 동안 중국집을 했다.
가게는 작았지만 하루는 길고 무거웠다.
짜장면 배달통에는 늘 손때가 묻어 있었고, 뚜껑을 열면 기름 냄새와 함께 삶의 온도가 훅 올라왔다.
그 안에는 짜장면만 담겨 있지 않았다.
아이의 밥, 생활, 빚, 피로 같은 것들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일”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사는 거지.”
물론 울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아무도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다 운동회 날이 왔다.
엄마 달리기.
순득이는 아침 배달을 마치고 늦게 도착했다. 앞치마를 겨우 벗고 운동장에 섰다.
이미 숨이 조금 차 있었다.
출발선에 엄마들이 섰다.
누군가는 긴장했고, 누군가는 이미 포기한 얼굴이었다.
총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순득은 가게도, 빚도, 철가방도 잊었다. 그냥 뛰었다.
141cm의 다리가 놀라울 만큼 바쁘게 움직였다. 보폭은 짧았지만, 대신 횟수로 밀어붙였다.
탁탁탁탁 —
“어, 저 엄마 되게 빠르다.”
“…어? 우리 동네 중국집 아지매네.”
순득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면 들었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 순득이는 1등도, 꼴찌도 아니었다.
그냥 끝까지 갔다.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아이들 뛰는 거랑 똑같네.”
주변 엄마들이 웃었다.
“언니는 아이들보다 더 진심인데.”
순득은 따라 웃었다.
그 말이 농담인지도 모른 채.
순득이는 국민학교를 마치고 바로 부산으로 가 생업에 들어섰다.
열두 살의 부산이 그녀의 첫 출발선이었다.
짜장면 통을 들고 키운 두 아이는 이제 다 컸다.
아들은 공학 박사로 연구원이 되었고, 딸은 선생님이 되었다.
두 사람은 오늘도 엄마에게 전화한다.
그 엄마가 런던에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낯선 듯이.
지금 순득이는 런던 거리를 걷는다.
나보다 느리게 걷는 법이 없다.
가끔 내가 말한다.
“좀 천천히 가자.”
그러면 순득은 말한다.
“이미 천천히 가는 중인데.”
인생이란 결국 거창한 게 아니라
운동장 한 바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숨이 차고, 누가 뭐라 해도
짧은 다리로 끝까지 걸어가는 것.
그 한가운데엔 늘 순득이가 있었다.
141cm의, 끝내 멈추지 않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