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여 개의 정답, 그리고 마추픽추로 가는 길 - 3화

(저마다의 저울)

by류정uk


“이상하다.”


평생 이 말을 몇 번이나 했을까.

아마 밥 먹은 횟수만큼은 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저울 하나쯤은 가지고 산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정상이고 이상한지,

어디까지가 상식이고 어디서부터가 무례한지.


우리는 그 눈금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어김없이 말한다.


“이상하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내 저울이 꽤 정확하다고 믿었다.


백여 개 나라를 넘나들면서 그 저울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크루즈에서는 남의 접시를 들여다보는 게 취미가 됐지만, 처음 당황했던 건 훨씬 오래전이었다.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 앞에서였다.


중동의 한 병원에서 일할 때였다.


여섯 명이 함께 지내는 병실에서 사람들이 바닥에 둘러앉아 손으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아니, 숟가락이나 포크가 있는데 왜 굳이 손으로 먹지?’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잠깐만…… 나도 손으로 먹잖아.’


상추 한 장을 손바닥에 올리고,

삼겹살 한 점 얹고,

쌈장을 바르고,

마늘 하나 꼭 찍어 올리고,

밥까지 조금 얹는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야무지게 싸서 입으로 가져간다.

(아이고, 침 넘어가는 거…!)


나도 만만치 않았다.


평생 쌈을 입에 욱여넣으며 살아온 사람이 남의 식사법을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이상하다’는 말의 상당 부분은 이런 뜻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이 익숙하지 않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도 그랬다.


아랍 사람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반갑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며 볼에 입을 맞추곤 했다.


쪽.

쪽.


그걸 본 나는 거의 비상사태였다.


이해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탈출을 준비했다.


‘우리 초면인데요?’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도 해야 하나,

웃어야 하나,

고개라도 숙여야 하나.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 나는 그 자리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한쪽 볼을 내주고 끝난 줄 알았는데,

반대쪽이 또 다가왔다.



그렇게 굳어버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어린 시절 내 별명은 ‘깜불’이었다.


“이번엔 니가 까만 고추 달린 남동생 하나 불러와야 된다.”


다음엔 꼭 아들을 낳으라며 어른들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하지만 내 밑으로 쌍둥이 딸이 태어났다.

우리 집은 딸만 여섯이 되었다.

넷째인 나는 아들은커녕 딸 쌍둥이까지 불러온, 진짜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다.


‘깜불’이라는 이름은 완전한 실패작으로 판명이 나고,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은 쌍둥이 딸들 다음에야, 늦둥이로 연달아 둘이 왔다.


그 사이에 낀 나는 누구에게 안겨본 기억도,

누군가를 안아본 기억도 없이 자랐다.


생전 처음 받아본 볼키스는 가족이 아니라 초면의 아랍 사람에게서였다.


그때는 그게 사건이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저 내게 낯선 다정함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국경을 넘을 때마다 비슷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나라에서 정답이라고 믿었던 것이

국경 하나를 넘는 순간 다른 정답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의 저울은 여행할 때마다 눈금이 달라졌다.


지금은 리마를 지나 해발 3,400미터의 쿠스코로 향하고 있다.


크루즈에서 늘어난 허리둘레 때문에 청바지 단추는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고산병 약을 삼켰는데도 숨은 자꾸만 가빠진다.


숨 한 번 들이쉬는 것조차 평지 같지 않은 이곳에서, 나는 또 내 저울을 만지작거린다.


이번에 흔들릴 눈금은 조금 더 클 것 같다.


나는 지금 이 높이에서 헐떡이고 있지만,

누군가는 이 높이에서 평생을 살았다.


문명이란 무엇인지.

발전했다는 것은 무엇인지.

원시적이라는 말은 과연 누구의 기준인지.


우리는 그들의 과거를 ‘고대’라고 부르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그저 헐떡임 없이 숨을 쉬며 살아가던 ‘오늘’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월요일은 없었겠지만,

월요일 같은 날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괜히 몸이 무거운 날도,

장날이라 들뜬 날도,

잔칫날이라 배부른 날도 있었을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을 것이고,

누군가를 만나 웃었을 것이고,

사랑했을 것이고,

내일을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 눈에는 밥상 앞에서도 작은 화면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우리가 더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말은 이렇게 해도,

이 글도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쓰고 있다.


이제는 ‘이상하다’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묻는다.


‘저 사람에게는 이것이 왜 당연할까?’


마추픽추에서 만날 또 하나의 정답은

저울에 올리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저울도 하나쯤 놓고 올까 한다.


들고 다녀봐야,

또 흔들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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