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 코앞에서 라면에 무너지다
원래는 마추픽추 여행기를 1화, 2화, 3화 순서대로 차곡차곡 올려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도저히 순서를 지킬 수가 없어서 특별편으로 먼저 올립니다.
왜냐고요?
어제가 바로 마추픽추 코앞 마을에 도착한 날이거든요. 이 뜨끈뜨끈한 감동, 그리고 라면 국물 식기 전에 생방송으로 나누고 싶었습니다.
2, 3화는 이 특별편 다음에 순서대로 이어집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feat. 나만 몰랐던 K-라면 지구 정복설)
여러분, 저는 어제부로 인생 버킷리스트 하나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마추픽추 관람이 내일입니다.
어제 도착해서 겨우 입장권을 손에 넣었을 뿐인데 벌써 이렇게 감동이 넘치면, 내일은 대체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순서대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일단 입장권부터 사야 했습니다. 두 시간 넘게 줄을 섰습니다. 쿠스코에서 3박 4일간 고산 적응 겸 마추픽추 관람 준비운동을 하면서 느낀 건,
적어도 10년 전에는 왔어야 했다는 자각이었습니다.
숨 고르기, 코피 나기, 머리 아프기를 다 겪었는데, 생전 안 하던 코피는 정말 저를 깜짝 놀라게 했어요. 젊을 때는 밤새 돌아다녀도 멀쩡하던 몸이 이제는 계단 좀 올랐다고 코피를 쏟다니. 칠순의 몸이 저한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모, 여기 잉카가 아니라 응급실 가셔야 할 듯."
티켓 오피스, 9월의 햇살 아래 길가에 열병식처럼 늘어진 줄. 다리는 후들거리고 정신은 몽롱한데, 그 긴 줄을 끝내고 드디어 문화센터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요.
매표소가 거기에 차려져 있더군요.
그런데 끝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줄 서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길게 늘어선 줄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건물 안을 뱅뱅 도는데, 157cm의 한국 할매는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 속에 끼여 앞에 벽도 제대로 안 보이고 그냥 밀려가고 있었습니다. 거의 지하철 2호선 출근길 수준이었어요.
‘여기가 서울인지 잉카인지.’
옆에 있던 어느 덩치 큰 청년이 저를 힐끗 보더니 자리를 한 뼘 내주더라고요. 이 나이에 이런 배려를 받으니 고맙기도 하고, 살짝 서럽기도 하고.
그렇게 밀려가다 어느 계단 중간쯤에서 올려본 벽에 태극기가 딱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여기, 잉카 제국 한복판에요.)
금빛 안내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페루 세계유산 마추픽추 보존 및 관리 역량 강화 국제협력사업 현장사무소.'
저는 그 자리에서 울컥했습니다.
‘야, 우리나라가 이 먼 데까지 와서 마추픽추를 같이 지키고 있었구나.‘
46년 전, 여권 받을 자유도 없어 떠나야 했던 그 나라가, 이제는 지구 반대편 잉카 유적지에서 태극기를 페루 국기와 나란히 내걸고 문화 지원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두 시간 줄 서기의 피로가 순식간에 애국심으로 승화되는 마법.
그렇게 무사히 표까지 손에 쥐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기차 안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나는 지금 신비롭고 고요한 잉카의 관문 마을로 가고 있구나.'
웬걸요.
저녁에 거리에 나가보니 완전 홍대 클럽 거리를 옮겨놓은 줄 알았습니다. 가라오케 바, 마사지, 약국, 셀 수 없이 많은 레스토랑, 반짝이는 네온사인.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스피커 볼륨을 최대치로 켜놓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거리.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얘들아, 여기 잉카 신들이 주무시고 계신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음악 비트가 꽤 좋아서 저도 모르게 어깨가 한 번 들썩였습니다. 칠순의 어깨는 아직 국뽕보다 비트에 더 정직하게 반응하더군요.
그 광경을 보다가 열쇠들이 주렁주렁 달린 다리 위에 도착했습니다.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내가 너네 나이일 때는 이런 거 꿈도 못 꿨어!‘
완전 전형적인 '라떼는 말이야' 감성이 올라온 거죠.
그 많은 무리 속에 단연 제가 몇 안 되는 고령자였거든요.
지나가던 커플이 다리 위에서 혼자 훌쩍이는 동양 할머니를 흘끔거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뭐 어떻습니까. 이 나이에 남 눈치 볼 일도 아니고. 아마 그 커플은 숙소에 돌아가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릅니다.
"아까 다리 위에서 울던 그 동양 할머니, 무슨 사연이지?"
얘들아.
실연 아니고 인생이었단다.
60년대, 70년대 먹고살기 바빴고,
80년대 초 중동 현장에서 계약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못 나올까 봐 영국으로 튀었던 내 인생.
그리고 이제, 지구 반대편 산골 마을에서 클럽 음악을 배경 삼아 감성 폭발 중이었습니다.
끝내 누리지 못한 젊음과 자유가 부럽고, 조금은 억울해서.
호텔 로비에 청승맞게 혼자 앉아서 눈물, 콧물 다 짜내고 있는데…
배는 또 왜 이렇게 고픈 겁니까.
감성이고 뭐고, 위장은 국적도 나이도 가리지 않고 정직하게 신호를 보내더라고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일단 뭘 좀 먹어야겠다 싶었죠.
그런데 이 산골 마을, 해발 2,000미터, 잉카 유적 코앞에서 제가 뭘 발견했.게.요?
분식센터.
여러분, 저는 그 순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마추픽추 아랫마을에 한글로 떡하니 '분식센터'라고 쓰여 있고, 메뉴는 전부 라면뿐인, 기막힌 한국인의 상술.
컵라면에 물만 부어주는 집이었습니다.
그것도 자동 기계로요.
재료비 거의 제로에 인건비는 버튼 하나.
이걸 만든 분, 노벨 경제학상은 못 받아도 노벨 상술상은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진짜 압권은 그다음이었습니다.
그 분식센터 앞에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라면 한 그릇 먹겠다고 줄을 서 있는 겁니다. 프랑스 애들, 독일 애들, 미국 애들이 나란히 서서,
"라면! 라면!" 하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 제 안에서 뭔가가 또 한 번 빵 터졌습니다.
태극기에 한 번, 라면에 한 번. 이 기막힌 타이밍이라니.
"야 이것들아, 저게 바로 K-푸드다!"
속으로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갑자기 제가 무슨 K-라면 홍보대사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계약서도 없고 출연료도 없는, 그야말로 재능 기부 홍보대사였죠.
그래서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네, 시켰습니다.
그리고 컵라면 한 그릇을 앞에 놓고 또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감동의 눈물인지, 얼큰한 국물 때문에 매워서 나는 눈물인지 저도 헷갈리더라고요. 옆에 있던 프랑스 청년이 그 모습을 보더니 살짝 겁먹은 표정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아가.
컵라면 하나에 이 정도로 무너지는 게 바로 K-감성이란다.
결론이 뭐냐고요?
여러분, 인생이라는 게 참 별거 없습니다.
60년대의 가난도,
70년대의 노동도,
80년대의 타향살이도,
46년간의 세계 유랑도…
결국 마추픽추 코앞 마을에서 태극기 한 번, 클럽 음악 한 번, 라면 한 그릇으로 이렇게 완벽하게 정리되더라는 겁니다.
제 인생 스토리는 결국
"그녀는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라면 먹고 행복했습니다."
로 요약되는 거죠.
대하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라면 CF였습니다.
아 참, 제가 지금 있는 이 마을 이름을 말씀 안 드렸네요.
이름하여 아과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
스페인어로 '뜨거운 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부로 필명을 바꿨습니다.
아쿠아 알리칸테.
스페인 휴양지 알리칸테(Alicante)에 '물(Aqua)'을 얹어 만든, 입에 착 감기는 이름이죠.
뭔가 있어 보이나요?
여러분, 온라인카지노 작가는 이렇게 즉흥적으로 탄생하는 겁니다.
내일, 드디어 진짜 마추픽추에 오릅니다.
아직 입구에 닿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벌써 인생 하나를 다 살아낸 기분입니다.
여러분도 인생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
일단 라면부터 드세요!
감동은 그다음입니다.
마추픽추를 코앞에 두고, 라면 한 그릇과 국뽕 한 사발을 함께 삼키며.
- 아쿠아 알리칸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