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밥도 안 되는 온라인카지노, 그런데 눈은 뜨게 하네

by류정uk


계획에도 없던 온라인카지노 시리즈가 독자들의 댓글 덕분에 계속된다.


이번에는 댓글 하나가 내 눈을 뜨게 했다.


지지난주에 쓴 「모든 것은 두 개의 차고에서 시작되었다 2편」에 댓글 하나가 달렸다.


“볼 수가 없어서 듣기만 해도 머릿속에 장면이 아주 생생해요.”


‘볼 수가 없어서 듣기만 한다’라니. 한동안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귀로 듣는 글이 눈앞에 생생한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곧바로 그분의 프로필로 달려갔다. 클릭 속도로만 따지면 아마 일흔 인생 최고 기록이었을 것이다. 내 손가락이 이렇게 빨리 움직인 적이 있었나.


이름은 래파. 소개란을 보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멈춰 섰다.


“시력 잃고 문학을 알게 되고 드디어 작가의 꿈을 꾸는 아저씨.”


이 문장을 세 번쯤 다시 읽었다. 오타도, 순서가 바뀐 것도 아니었다. 진짜였다. 곧장 그분이 쓴 소설 「샛별을 품은 그림자」를 찾아 읽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정통 시대소설이었다.


조선 정자의 팔작지붕 위로 떨어지는 저녁 빛, 연못 물결에 흔들리는 기모노 자락까지…. 스크린 리더는 그저 무심한 기계음으로 문장을 읽어 내려갈 뿐인데, 그 단조로운 소리 너머로 풍경이 한 겹 한 겹 색을 입어가며 눈앞에 세워지고 있었다.


속으로 헛웃음과 함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 양반,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 나보다 세상을 더 잘 보고 계신 거 아닌가.’


누군가는 두 눈을 뜨고도 문장 하나 제대로 못 써서 헤매는데, 그분은 소리로 받아들인 세상을 우리 눈앞에 다시 세워 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분의 소설 밑에 댓글을 남겼다. 처음에는 정중한 감상평만 남기려 했는데, 쓰다 보니 내 속내가 줄줄 새어 나왔다.


나 역시 어느덧 일흔이다. 평생 아이들 셋 키우며, 대학에, 온라인 게임에, 사업에 매달려 사느라 활자와 멀어졌고, 요즘은 늘그막에 AI로 듣고 구술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마이크에 대고 말을 걸다가 혼잣말하는 노인네처럼 보일까 봐 방문부터 닫고 시작한다.


며칠 전에도 휴대전화 글씨를 세 번이나 확대하다가 결국 화면을 덮어버렸다. 들여다보던 눈이 흐려지는 그 몇 초의 순간이 참 쓸쓸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래파 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돌아갈 곳을 생각한다.


타국에서 45년을 사는 동안, 나는 항상 어딘가에 잠시 머무는 사람이었다. 인생 후반전에 겨우 조국에 엉덩이 붙일 자리 하나 마련했는데, 온라인카지노가 내준 곳이다.


벌써부터 이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난다.


그런데 래파 님의 글을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방법은 달라질 수 있어도, 쓰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얼굴도 모르는 분에게 참으로 귀한 공부를 했다. 수업료 한 푼 안 내고 이런 깨달음을 얻다니, 역시 온라인카지노는 종합대학이다. 등록금 없는 대학치고는 강의 수준이 너무 높다.


마침 얼마 전, 다른 작가님과 여든까지 이 공간에서 글을 쓰자는 약속을 나누었다. 나는 그 약속에 래파 님도 슬쩍 끼워 넣었다. 본인 동의도 안 받고 순전히 내 마음대로. 훗날 그분이 “저는 그런 약속 한 적 없는데요”라고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지만, 그 리스크는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여든에도 서로 글을 나누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온라인카지노는 원고료를 주지 않는다. 밥도 안 된다. 하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이 문학을 만나 펼쳐내는 세상, 그리고 그 이야기가 눈이 침침해져 가는 다른 사람에게 다시 쓰고 싶다는 마음을 건네는 순간을 선물한다.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하지만 먹먹한 채로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댓글 하나가 사람을 데려오고, 사람이 이야기를 데려오고, 이야기는 다시 나를 바카라상 앞으로 데려간다.


오늘 밤, 나는 휴대전화 글씨를 크게 키우는 대신, 화면 속 글자들이 들려주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 너머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을 다시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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