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카지노 작가님의 글을 인연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를 보았습니다.
영화가 남긴 잔잔한 파동이 마음속에 찰랑찰랑 강물처럼 흘러듭니다.
1. 요코하마의 푸른 빛과 비밀스러운 노래
영화의 제목은 이시다 아유미의 노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의 가사의 한 구절입니다.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나는 흔들려 흔들려서 당신 품에 안겨 발소리만 따라오는 요코하마 푸른 빛의 요코하마 부드러운 입맞춤을~"
종일 부엌에서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면서도 파친코로 스트레스를 풀고, 남몰래 이 노래를 흥얼거리던 어머니. 남편의 외도를 목격했던 날 남편과 정부가 있는 방에서 들려오던 그 노래를 음반으로 사서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해 온 어머니, 지나간 시간이어서일까요? 이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표정은 점심 메뉴로 무엇을 먹었다는 말을 하는 듯합니다. "숨어서 듣는 노래 하나쯤 누구나 있기 마련"이라는 유카리의 대사처럼,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가족에게도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 비밀과 무게가 있다는 것을 영화는 담담히 보여줍니다.
2. 우리네 아버지들을 닮은 풍경
영화 속 아버지는 가족 사진을 찍을 때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어영부영 하다 결국 사진 속에 담기지 못합니다. 아들과 단 둘이 거실에 남았을 때의 어색한 기류, 거실에서 웃음꽃이 피어날 때도 혼자 방안을 지키던 그 뒷모습은, 7~80년대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하지만 손주들 앞에서는 한없이 너그럽고 따뜻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그들. 기대에 못 미치는 둘째 아들과 그가 데려온 '중고' 같은 인연들을 마뜩잖게 여기면서도, 어린 아이를 대하는그들의 태도는 한없이 너그럽고 따뜻합니다.
3. 오래된 나무의 푸름과 백일홍에 쏟아지던 햇살의 영상미
영화의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영상미일 것입니다. 백일홍을 향해 뻗은 아이들의 손 위로 부서지던 햇빛, 동네를 감싸 안은 오래된 나무들의 짙은 푸름, 그리고 그 잎새들을 살랑살랑 흔드는 바람의 소리.
아이들이 골목에서 한 치수 큰 신발을 신고 뛰어놀던 장면을 보며, 극적인 기승전결 없이도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영화가 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마치 노먼 매클레인의 '흐르는 강물처럼'이 떠오르는,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4. 늘 한 박자 늦는 우리에게
영화에는 인상적인 대화가 등장합니다. 흰 나비가 겨울을 나면 노란 나비가 된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훗날 료타가 자신의 딸에게 똑같이 들려주는 장면이지요. 부모의 말은 그렇게 자식의 입술을 통해 대물림됩니다.
료타는 어머니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스모 선수의 이름을 뒤늦게야 알게 됩니다. "언제나 이렇다니까, 늘 한 발 늦어."라며 안타까워하던 그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가족이기에 늘 당연하게 여기고, 부모님이 마냥 기다려 줄 것 같지만 삶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마치며 : 마음에 남은 대사
"여자는 몇 살이 되어도 애교가 필요해."(엄마)
"증오할 상대가 업는 만큼 괴로움은 더한 거야."(엄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어도 서로 가닿지 못해 '걸어도 걸어도' 흔들리는 우리들. 하지만 그 흔들림조차 삶의 소중한 무늬임을 고레에다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오늘 밤, 제 마음속에도 찰랑찰랑 맑은 강물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