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칼리 에세이 < 아무튼, 사주>
외출할 때면 습관처럼 가방 속 묵직한 타로 카드 78장을 매만진다. 손끝에 전해지는 빳빳하고 사각거리는 질감. 그 작은 종이 상자를 품에 안고 길을 나설 때면, 왠지 모르게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 앞에 조그만 등불 하나를 들고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얼마 전 정홍칼리 작가의 에세이 『아무튼, 사주』를 읽다가 오랫동안 마음에 부유하던 질문 하나를 마주쳤다. 저자는 글 쓰는 무당이자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며, 자신이 매일 만나는 '사주'라는 세계를 이렇게 고백한다.
"사주는 운명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 운명을 지닌 사람을 이해하게 해주는 거구나."
"낯선 사람, 당신의 세계로 들어가도 되겠냐는 물음, 조심스러운 노크다."
빛바랜 생각의 수첩을 펼쳐보듯 이 두 문장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명료한 법칙과 답이 명확하던 수학교사 시절에도, 그리고 교단을 내려와 삶의 2막을 살아가는 지금도, 내가 명리학과 타로를 공부했던 진짜 이유가 바로 그 두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별, 나이, 직업 같은 슬롯적 분류표는 '상식'이라 부르며 너무나 당연하게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 분류표가 사람의 본질을 전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정작 그 견고한 분류표 밖에 놓인 수많은 마음은 손쉽게 소외되고 만다.
언제부터인가 명리학과 점술에는 '미신'이라는 혐오와 경계의 딱지가 붙었다. 타인을 특정 틀에 가두고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판단하던 과거의 왜곡된 해석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성의 '관성'은 권력과 출세로 풀면서 여성의 '관성'은 남편 복으로만 읽어내던 권력의 언어. 그 낡은 렌즈를 거두어낼 때, 비로소 자연의 순전한 얼굴이 드러난다.
나무, 불, 흙, 금, 물. 오행의 세계에는 우열이 없다. 차가운 겨울이 따스한 여름보다 모자란 계절이 아니듯, 느리게 서 있는 산이 빠르게 자라나는 나무보다 부족한 것이 아니듯 말이다.
결국 명리학이나 타로는 족집게처럼 미래를 맞춰 부귀영화를 예언하는 도구가 아니다. 상대의 어깨에 들어간 힘이 조금 풀렸을 때, 가벼운 농담이 한 번 오가고 서로의 마음이 살짝 열렸을 때 조심스럽게 건네는 수줍은 고백이다.
"당신이 어떤 계절에서 시작되었는지, 그 고유한 결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살다 보면 안개가 자욱하게 낀 숲길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내가 왜 지금 이런 선택을 내리고 있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우리는 흔히 인생의 거친 파도를 만날 때 '삼재(三災)'가 들었다며 두려움에 떨거나 자바카라하곤 한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삼재는 삶을 망치러 오는 재앙이 아니라, 나를 다른 삶의 지평으로 데려가는 새로운 계절일 뿐이다. 신은 두려움을 심지 않으며, 부정의 예언으로 존재를 위협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토정 이지함 선생이 『토정비결』을 썼던 마음도 이와 같았으리라. 미래를 예언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고단하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삶의 위안을 건네고 다가올 추위를 견딜 마음의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함이었다.
글자는 지도일 뿐이다. 지도만 보고 걸을 수 없듯, 정작 중요한 것은 글자 뒤에 숨은 한 사람의 지친 한숨을 먼저 들어주는 일이다.
요즘도 가끔 누군가와 마주 앉아 타로 카드를 펼친다. 카드의 그림을 매매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단단하게 잠겨 있던 상대의 마음 빗장이 스르륵 풀어지는 순간을 목격한다.
처음엔 "갑자기 웬 타로?"라며 생경하게 바라보던 가족들도, 마음에 작은 그늘이 지거나 깊은 대화가 그리울 때면 슬그머니 다가와 카드를 건넨다. 미신이라 치부하기엔 그 카드가 만들어내는 관계의 온도가 너무나 진솔하고 따스하다.
가방 속에 담긴 타로 카드는 누군가를 규정하거나 미래를 단정 짓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하나의 기호로 환원하지 않고, 그의 지금 마음을 가만히 보듬어주기 위한 다정한 노크다.
혹시 당신도 이해받지 못할 두려움에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걸고 있지는 않은가. 슬롯가 정해놓은 거친 기준에 치여 나의 삐뚤뚤함이 부끄러워진 날이 있다면, 조용히 당신의 계절을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어떤 계절에서 시작되었나요? 그 계절의 다정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