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고 되짚어본 '도망의 삶'과 바카라임
월요일 아침, 설거지통에 그릇을 쌓아두고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집안일을 하거나 산바카라을 할 때 오디오북을 듣는 시간은 내가 일상에서 숨을 돌리는 작은 쉼표다.
손은 묵묵히 접시를 닦고 있지만 귀로는 다른 세계를 탐험하던 중, 오디오북 앱 화면에 뜬 노릇노릇한 빵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자칭 '빵순이'인 나로서는 그냥 지나치기 힘든, 갓 구운 소금빵의 표면처럼 윤기가 흐르는 단정한 그림이었다. 그런데 제목이 조금 이상했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
'빵충? 빵을 너무 좋아해서 탈인 나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
가벼운 호기심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수세미를 든 손을 멈춘 채 화면 속 빵 그림을 다시 유심히 바라보아야 했다. 그것은 빵이 아니라, 갓 구운 소금빵과 외형도 맛도 똑같은 신종 식용 애벌레 '빵충'이었다.
김혜영 작가의 장편소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은 시작부터 이상하고 황당한 설정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무명 트럼펫터로 살다 빚에 쫓겨 시골로 귀농한 주인공 '정한'. 야심 차게 시작한 딸기 농사마저 처참하게 망해버리고 인생의 바닥에 다다른 그에게, 빵 맛 나는 애벌레 '빵충' 사업은 마지막 구원처럼 찾아온다. NO 밀가루, 고단백 건강 디저트라는 열풍을 타고 정한은 순식간에 고수익자가 되지만, 그 달콤한 성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우후죽순 생겨난 사육 농가로 인한 가격 폭락, 그리고 돈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이 어겨버린 '사육 준수 사항'. 소설은 블랙코미디로 출발해 이내 피칠갑이 된 마을과 정체불명의 공포 스릴러로 맹렬하게 내달린다.
오디오북의 몰입감 있는 성우의 목소리를 따라가면서도, 내 마음을 정작 쿵 하강하게 만든 것은 장르적인 공포가 아니었다. 곤충 재배라도 붙잡아보려 발버둥 치는 정한의 서글픈 초상,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우리 시대의 '길들여짐'이었다.
소설 속 정한은 평생 도망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음악의 불안정한 현실이 두려워 겉돌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미래를 물어올 때는 자신의 초라함을 감추려 부담스럽다며 뒤로 물러났다. 농촌으로 내려와 5년 동안 빵충을 기르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진짜 농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온 마음을 던져 삶을 붙잡을 용기가 없어, 그저 초라한 진짜 나를 숨기기 위해 농부라는 직업 뒤로 위장해 도망쳐왔던 것이다.
소설의 후반부, 마을이 잿더미와 검은 성충들로 점령당했을 때 여성 농부 신언주가 정한에게 던진 한마디는 오디오북을 듣던 내 가슴을 크게 찔렀다.
"나는 사냥꾼이여. 사냥꾼은 죽을 때까지 사냥질허는 사람이여. 넌 뭐여?"
그 질문 앞에서 정한은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평생 얼마나 많은 현실로부터 도망쳐 왔는지를. 실패해서 또다시 초라해질까 봐 그 무엇에도 온 힘을 다하지 않았던 지난날들이 등 뒤의 죽음처럼 그를 덮쳐오고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 온 땅이 불길과 재로 덮이는 절망적인 재앙 한복판에서 정한은 비로소 도망치는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옷장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황금빛 트럼펫을 꺼내 든다. 시골에 내려온 후 매일 꺼내 불어 윤이 나던, 그가 유일하게 놓지 못했던 진짜 자신의 모습.
그는 온 힘을 다해 폐가 터질 듯 공기를 삼키고 트럼펫을 불어제낀다.
빠아아아아아아아앙—
그것은 비명이 아니었다. 슬롯가 정해놓은 규격과 타인의 눈치라는 '사육 틀'에 길들여진 채 평생 도망만 다니던 한 인간이, 마침내 자신의 허물과 죗값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날개를 펼치는 '야생종'의 첫 울음이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망해버린 삶 속에서도 문득 살아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 다 끝난 자리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마음들... 나는 어떤 압력 아래에서 짓밟혀 터지는 순간도, 끝끝내 우화해내고 마는 순간도 모두 사랑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그릇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정한의 마지막 트럼펫 소리가 가슴속에서 길게 울렸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삶의 어느 순간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육종'들일지도 모른다. 초라해지는 게 두려워서, 죗값과 바카라임이 무거워서 애써 모른 척 위장하며 살아가는 일상들.
하지만 소설은 말해준다. 기적 같은 구원이나 은총이 없더라도, 내 삶의 핸들을 내 손으로 직접 꺾고 바카라임을 끌어안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가을바람이 베란다 창문을 흔드는 오후, 마음속 깊은 옷장 서랍에 묵혀두었던 나만의 '트럼펫'은 무엇이었을지 가만히 손을 얹어본다. 도망치지 않고 끝내 붙잡아야 할 진짜 내 삶의 미래를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