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 <김혜자의 안부>를 보고 ... 누군가의 키다리 아저씨로
잠이 오지 않는 가을밤이었다. 창밖의 정적 속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뒤적이다 우연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김혜자의 안부: 죽지 마세요>를 재생했다. 화면 속, 평생을 눈부신 조명 아래 살아온 대배우 김혜자는 뜻밖에도 수줍고 소박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죽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내세요, 눈이 부시게."
화면 너머로 나직이 건네는 그 안부 인사는 단숨에 가슴을 파고들었다.
여러 장면 중에서도 오래도록 눈길을 잡은 순간이 있었다. 후배 배우 최강희 씨가 월드비전 홍보대사가 되었을 때, 김혜자가 보낸 영상 편지의 한 대목이었다.
"최강희 씨, 홍보대사가 된다는 게 축하할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선 좋은 배우가 돼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최강희 씨가 뭐 하는지 궁금해하고 따라 하려고 합니다. 우선 유명해지세요. 최강희 씨가 유명해야 많은 사람이 뭘 하는지 볼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쿵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세상 수많은 사람이 유명해지고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원한다. 그러나 대개는 개인의 영달이나 부와 명예를 위한 목적일 때가 많다.
하지만 김혜자라는 배우에게 '유명해진다는 것', '좋은 배우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무대가 아니었다. 그것조차 아프리카의 지독한 가난과 전쟁 속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기 위한 통로였던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데 꺼내어 놓는 그 지극한 순수함 앞에 마음이 아득해졌다.
그 고백을 들으며, 내 지나온 날들의 한 자락이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쓰기 시작했던 계기도 거창한 선의나 유복함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했을 뿐이다. 김혜자가 "나는 그렇게 할 만하니까 하는 거예요"라고 했던 것과 같이.
둘째 아이가 선천성 심장병을 안고 태어나 큰 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 자식이 아파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어린 자식이 아플 때 부모의 가슴이 얼마나 까맣게 타들어 가는지, 그 작고 어린 생명이 얼마나 애틋하고 가여운지를. 내 아이의 아픔을 통해 세상의 아픈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절박하고 애틋한 마음이 나눔의 시작이었다. 훗날 교직에 있으며 '올해의 스승상'을 받아 상금이 주어졌을 때 망설임 없이 난치병 어린이 돕기에 전달했던 것도, 그 아이들과 부모들의 타들어 가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살기가 너무나 고달프고 아득할 때 은연중에 바랐던 마음이 있었다. '나에게도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도 없는 캄캄한 길목에서 누군가 곁에 다가와 손을 꼭 잡아주기를,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 가만히 어깨를 내어주는 어른이 있기를 참 많이도 원했었다.
돌아보면 그 절실했던 기억이 내 삶의 은밀한 이정표가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거창한 구원투수는 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세상이 너무 차갑게 느껴질 때, 누군가 옆에서 손을 끌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순간에 나직이 다가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지친 이들의 곁에서 작지만 묵직한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는 삶, 그것이 내가 세상에 건네고 싶었던 온기였다.
하지만 나눔이란 결코 특별한 사람이나 여유 있는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큐 속 김혜자의 고백은 바로 그 지점을 나직하지만 힘있게 짚어준다.
"나는 어묵을 파는 분이 한 아이를 결연한다고 해서 울었어요. 그런 게 중요해요. 내 자식 같아서, 조금 버는 분이 조금이라도 나누려는 그 마음. 그게 모여서 큰일을 이루는 거예요."
큰 돈을 기부하고 거창한 봉사를 하는 것만이 나눔이 아니다.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내 이웃을 내 자식처럼, 내 가족처럼 여기며 작게나마 온기를 보태는 마음. 그 소박하지만 진실한 마음들이 모여 단절된 세상을 잇고 누군가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다.
요즘 세상을 둘러보면 삶의 무게에 눌려 지치고 외로운 이들이 참 많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행복이나 이 자리는 온전히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배려와 슬롯의 그늘 덕분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작은 손길을 서로에게 내미는 것은 세상을 향한 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퇴직 후 손주를 돌보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나 역시 어느덧 나눔을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겨두려 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선생님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신 것 같다"는 후배 배우의 말처럼, 김혜자의 소박한 고백은 우리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따뜻한 연대의 감각을 세차게 깨워 일으킨다.
화면이 꺼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에서 가만히 마음을 다잡아본다. 우리가 거창한 위인이 될 필요는 없다. 그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 하나를 이웃에게 내어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살아보세요. 살아봐요. 삶의 기쁨은 그리 큰 것에만 있지 않아요. 햇볕에 반짝이는 풀잎을 보는 것도 삶의 기쁨입니다."
김혜자의 말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눈부신 하루를 누릴 자격이 있다. 각박하고 힘겨운 시기를 지나는 지금, 우리가 서로의 손을 조금씩 잡고 온기를 나누며 함께 걸어간다면 이 어두운 터널도 한결 따뜻하게 건너갈 수 있지 않을까.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내 작은 온기가 닿을 곳을 향해 다시 소박한 마음 하나를 보태어본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눈부신 내일을 응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