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이름은>과 <한란>, 그리고 감악산 위령비 그 아픈 역사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늦은 밤, 한 OTT 서비스를 통해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내 이름은>을 감상했다. 분홍색 선글라스를 낀 정순(염혜란 분)이 하얀 차에 올라 제주 들녘을 누비는 첫 장면부터 시선이 고정되었다. 제7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초청작이라는 타이틀보다, 가슴속 깊이 묻어둔 78년의 약속을 끄집어내는 서사의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제주 4.3 사건의 공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1998년이다. 촌스러운 이름 때문에 놀림당하며 교실 안의 폭력을 방관하던 18세 소년 영옥, 그리고 8살 이전의 기억을 까맣게 잃은 채 바람이 불고 햇빛이 비치는 날이면 발작을 일으키는 어머니 정순이 등장한다. 의사의 도움으로 반세기 전 기억의 파편을 맞춰가는 정순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는 제주의 역사와 1998년 교실 내 폭력의 메커니즘을 교차시킨다.
정지영 감독은 거대한 학살 장면을 스펙터클하게 재현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권력에 의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얽히고, 침묵과 방관이 일상화되는 교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을 조명한다. 외부 권력인 전학생에 의해 난생처음 반장 완장을 차지만 결국 꼭두각시로 전락하는 영옥의 무기력함은, 1949년 당시 국가 권력과 이념의 광풍 속에서 생존을 위해 서로를 밀고하고 방관해야 했던 민중의 모습과 닮아 있다. 교실이라는 미시적 공간을 통해 1949년 제주의 비극적 구조를 유추하게 만드는 연출은 거창한 구호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의 잔상이 채 가시기 전에 얼마 전 또 다른 OTT 서비스에서 보았던 4.3 영화 <한란>이 겹쳐 떠올랐다. 1948년 제주,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피신하다 딸 해생과 생이별하게 된 엄마 아진(김향기 분)의 생존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여성과 어린이의 시선으로 포착해 낸 생존의 기록은 4.3의 비극을 사실감 있게 전한다. 엄마를 찾아 산을 오르는 어린 딸과, 딸을 구하기 위해 하산을 결심하는 엄마의 엇갈리는 발걸음은 거대한 역사에 짓눌린 개인의 고통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두 영화를 마주하며 기억은 자연스럽게 육지의 한 골짜기로 향했다. 지난 5월 감악산 아래에서 마주했던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위령비였다(관련 기사 : 겨우 두 살, 네 살... 절로 눈이 뜨거워지는 어린 이름들).
1951년 2월,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국군에 의해 무고한 주민 700여 명이 희생당한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역시 제주 4.3과 동일한 맥락에 서 있다. 공비 토벌이라는 명목 아래 '이쪽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었다. 거창 감악산 골짜기에서 스러져간 이들은 이념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평범한 농민이었고, 누군가의 부모이자 어린아이들이었다.
교과서의 건조한 기록으로만 접하던 역사를 영화의 영상과 현장음으로 마주하는 일은 역사의 무게를 직면하게 한다.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역사의 평가와 흐름은 달라진다. 사람을 중심에 둘 것인가, 아니면 이기고 지는 승패에 의미를 둘 것인가. 이쪽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규정했던 이념의 광풍 속에서 우리는 명확한 사실 하나를 확인한다. 전쟁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전쟁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영화 <내 이름은>의 후반부, 아들이 어머니의 진짜 이름을 되찾아주려 개명신청서를 쥐어주지만 법적 벽에 부딪히는 장면은 현실의 가슴 아픈 자화상이다. 그러나 스크린 너머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었다. 영화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대관료를 모아 전국에서 120회가 넘는 자발적 관객 시슬롯를 열었다고 한다. 엔딩 크레딧을 채운 수많은 후원자들의 이름과 초성은 그 자체로 거대한 기억의 연대였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되찾아가는 정순의 여정을 보며 정리하게 된다. 역사의 광기 속에서도 우리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가치는 거창한 이념이나 승패가 아닌 '사람' 그 자체다. 70여 년 전 제주와 거창에서 지워졌던 수많은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일,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 폭력과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평화를 다지는 일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바카라임이다.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