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에서 정원 가꾸며 시 쓰는 권병엽 시인의 첫 시집 <모서리>를 읽고
어느 날부터인가 그가 그림에 깊이 빠져 지낸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더니 시를 쓴다고 했고, 2021년 <영남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그리고 등단 5년 만에 마침내 첫 시집 <모서리>(2026년 8월 출간)를 세상에 쏘아 올렸다.
▲권병엽 첫 시집 <모서리>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지체 없이 시집을 주문했다. '더 이상 종이바카라을 늘리지 않겠다'라던 나만의 다짐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의 시만큼은 꼭 직접 종이바카라을 사서 한 장 한 장 손끝으로 넘기며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일 배송을 자랑하던 인터넷 서점이었건만 이상하게 바카라은 일주일을 넘겨서야 도착했다. 목이 한 자는 길어진 채 기다리던 나는 택배 상자를 뜯자마자 선 채로 시집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의 시집을 두 번 완독하였다. 눈부셨다. 그가, 그의 시가. 그리고 팔공산 자락에서 풀꽃을 가꾸며 살아가는 그의 삶 전체가 눈부시게 가슴으로 들어왔다.
팔공산 자락의 사차원 '사랑꾼'과 아내의 인사말
권병엽 시인은 팔공산 자락에서 정원을 가꾸며 아내와 장모를 친어머니처럼 모시고 산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는 늘 철이 덜 든 듯 자기만의 사차원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가족을 위해서는 온 마음을 다하고 세상을 향해서는 한없이 열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시집 안에는 시인의 아내 박영림 씨의 글도 함께 담겨 있었다. 수십 년을 함께한 아내는 그를 '청안(淸安)'이라 부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마음가는 대로 평안하게 살라는 뜻이란다.
"수십 년 함께한 세월, 당당함은 언제나 그의 몫이었고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부끄러움마저 오랜 시간 발효되어 부러움이 되었다. 어쩌면 저렇게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원하는 것만 선별해서 생각할 수 있는 그만의 초능력... 교단을 떠난 지금, 나는 출석부 대신 계절을 세고 그는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그리고 쓴다." - 아내 박영림 씨의 인사말 중
시집 중간쯤에 다다르자 반가운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로 아내 박영림 씨의 시 <명퇴>였다. 평생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명예퇴직을 한 아내의 시 한 편을 자신의 시집 한 쪽에 슬그머니 넣어준 시인의 아내 사랑. 역시 소문난 사랑꾼다운 깊은 배려였다.
깎지 말고
맞춰 봐
깎는다고 변하는 게 아니야
(중략)
가슴을 녹여서
틈새에 한 번 부어 봐
모서리가 있어야
더 단단한 법이야
이렇게 사는 게
부부이고
가족이고
친구야
- 표제시 <모서리> 중에서
강희근 시인(경상국립대 명예교수)은 해설을 통해 권 시인의 시선이 '총체적 인식'에 닿아 있다고 평했다. 일반적인 시선은 각진 모서리를 깎아내고 다듬어야 서로 붙는다고 생각하지만, 권 시인은 깎아내기보다 가슴을 녹여 틈새를 채워야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안다. 타인의 모서리까지 품어 안는 강력 본드 같은 따뜻한 가슴, 그것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의 시집이 그저 개인의 소소한 정서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이토록 오랜 여운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유진서 도서출판 전서 대표의 추천사처럼, 권병엽의 시는 사물과 풍경 속에 우리 슬롯의 생존과 노동, 소외의 문제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시 <소비기한>에서 매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라면은 취업 문턱에서 고뇌하는 이 시대 청년의 모습을 닮았고, 그것을 집어 드는 할머니의 힘겨운 유모차는 중소기업과 우리 슬롯 소외된 이들의 허기진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이빙을 꿈꾸며 할머니 품에 안겨 우리는 함께 소비기한을 다했다.
- <소비기한> 중에서
부도난 공장에 남아 서로의 체온을 기억하는 물건들을 다룬 <버려진 목소리들>, 주인에게 버림받고도 길 위에서 사랑받았던 기억을 목줄처럼 차고 살아가는 <들개>와 <하울링>을 읽을 때는 절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버려진 자가 억울함을 내세우면 세상은 먼저 비웃는다"며 이빨을 감추고 견디는 들개의 처절한 마음을 읽어 내려갈 때는 인간의 잔혹함에 숨이 막혔다.
어머니라는 영원한 고향, 그리고 텅 빈 터
문단의 권위의식과 틀에 갇힌 행태를 꼬집는 <전통詩장>, <매트릭스>, <시보다 짧게> 같은 시를 읽을 때는 그의 담대한 배짱에 아찔하면서도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꼈다. 서문시장 골목의 해진 바지처럼, 사람 냄새 밴 언어로 시를 쓰고 싶다는 그의 고백은 문학이 도달해야 할 진정한 지점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어머니라는 영원한 고향, 그리고 텅 빈 터
슬롯와 시대를 향한 서늘한 자각 밑바닥에는 어머니와 고향을 향한 한없이 깊은 그리움이 깔려 있다. 시 <빈터>와 <회갑>, <어머니의 구십 년>을 읽는 동안 내 가슴에도 구멍이 숭숭 뚫리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산청에 가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어머니도 가고 안 계시는데
고향에 가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집도 무너져버린 빈터
두릅나무 울창한 숲되어
모기만 윙윙거리는데
- <빈터> 중에서
어머니가 부재한 고향은 더 이상 고향이 아니다. 텅 비어버린 집터에 서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 빈 장독대를 기웃거리는 시인의 마음은, 어머니를 여의고 살아가는 이 땅 모든 자식들의 서글픈 초상이다. 마흔 넘겨 낳은 늦둥이 막내아들이 길 잃을까 봐 평생을 기도하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그림자를 품고 이제 홀로 인생 이막의 걸음마를 시작하겠다는 그의 고백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가장으로서, 슬롯인으로서 '울지 못하는 병'에 걸려 억지로 용감해야만 했던 수많은 세월들. 시인은 시 <감성>을 통해 "나 이제 좀 울어도 되죠?"라고 묻는다. 그리고 이내 "웃기는 일도 없는데 웃어야 하는 사람들, 울어야 할 마당에 울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 난 울어도, 웃어도 괜찮다. 시인이니까"라며 자신을 보듬는다.
시인의 말처럼 그의 삶은 늘 가장자리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가장자리에서 길가의 풀꽃을 오래 바라보았기에, 이름 없이 하루를 견디는 이들의 숨결을 이토록 따뜻한 언어로 퍼 올릴 수 있었으리라. 시집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시인이 서문에 남긴 글귀를 다시 떠올려본다.
"이 시집을 덮는 순간, 내 시보다 당신의 삶이 먼저 떠오른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의 바람은 이미 이루어졌다. 그의 시를 읽는 내내 나 역시 나의 어머니를, 나의 가장을, 그리고 잊고 지냈던 내 안의 모서리들을 나지막이 불러보고 있었으니까. 세상을 향해 가슴을 녹여 틈새를 부어주는 팔공산 시인의 맑고 평안한(淸安) 다음 계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1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