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최은숙 청소년 시집 『지금이딱이야』를 읽고
시가 본래 우리 삶의 숨소리와 노랫가락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좋은 시란 모름지기 쉽고 읽는 이의 가슴에 단숨에 와닿아야 하지 않을까. 최은숙 시인의 청소년 시집 <지금이 딱이야>(2021년 4월 출간)는 바로 그 '쉽고도 투명한 시의 힘'이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새삼 깨닫게 하는 바카라이다. 저자 최은숙 시인은 오랫동안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호흡해 온 교사다. 그는 서슴없이 교단 아래로 내려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어설프고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내보인다.
▲최은숙 시인의 청소년 시집 『지금이딱이야』 표지 ⓒ 창비관련사진보기
선생님은 우리한테 딱이다
너희 선생님 아프시다
옆 반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오늘 교실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오신 선생님은
솔직히 학교 오기 싫었다고 하신다
배신자! 누군 오고 싶어서 오나?
선생님은 지각하는 아이를 세워 놓지 않으신다
선생님도 종종 지각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졸면 바카라을 덮고 오 분간 재워주신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빨리 주무신다
-<선생님은 우리한테 딱이다> 일부
"솔직히 오늘 학교 오기 싫었다"고 털어놓고, 졸아붙는 아이들에게 5분간 자자고 해놓고 정작 본인이 더 먼저 깊은 잠에 빠져버리는 허당기 넘치는 선생님. 이처럼 시인은 어렵고 현학적인 언어 대신, 교실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아이들의 생생한 입말과 유쾌한 일상을 그대로 시어로 가져왔다. 가식 없는 진심과 솔직함이 아이들의 마음 문을 여는 가장 강력한 열쇠임을 시인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학급에서 주고받는 '교환일기'는 이 시집의 가장 따뜻한 혈맥이다. 말썽쟁이 준영이의 철없는 연애사부터, 가정사의 그늘 때문에 말없이 우울해하는 아이의 사연까지, 일기장이라는 다정한 통로를 통해 교사와 학생은 서로의 삶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냥 나'로 살아갈 당당함... 시인의 시를 읽고 나도 시를 짓다
이 시집이 주는 진짜 미덕은 쉬운 언어 속에 담긴 묵직한 삶의 통찰이다. 장래 희망란에 '그냥 나'라고 적어 낸 학생과 담임선생님의 대거리는 이 시집의 하이라이트다. "중학생 때 꿈꾼 현모양처가 되었느냐"는 제자의 맹랑한 질문에 "그거 빼고 다 됐다"며 씁쓸하게 웃는 선생님. 이에 아이는 "거 봐요, 선생님도 뜻대로 안 됐잖아요. '그냥 나'가 정답이에요"라며 통쾌한 한 방을 날린다.
무언가 대단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세상의 압박 속에서 죄 없이 주눅 들어 살아온 어른들에게, "그냥 너로 살아라"라는 제자의 말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만드는 눈물겨운 구원이다. 자신을 바닥까지 낮추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시인의 겸손한 시선은, 타인을 정죄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참된 교육자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최은숙 시인의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그 끝에는 먹먹한 여운이 남아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만의 옛 기억과 삶의 소회를 자유롭게 건져 올리게 만든다.
나 역시 이 시집이 주는 맑은 기운에 끌려, 생전 처음 엄마의 손맛을 따라 해보며 느낀 솔직한 소회를 시 한 편으로 적어 보았다.
진짜 삶에서 건져 올려 서본 시 한 조각
[된장 담는 날 ]
태어나 처음으로 된장을 담아보기로 했다
엄마가 집을 지킬 때야
된장은 엄마만 할 수 있는 일
(중략)
자연 숙성 대신 냉장 숙성을 하기로 하고
냉장고에 된장을 넣었다
기도 한 자락도 같이 넣었다
'된장이 맛있게 익게 해주세요'
올해는 내가 담은 장으로
맛있는 식탁이 차려질 수 있기를
우리 엄마 장맛 손맛 내게도 쪼매는 있기를....
이처럼 최은숙의 시는 단순한 감상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독자 개개인의 가슴속에 묻혀 있던 사연들을 일깨워 스스로 시인이 되게 만드는 경이로운 감응력을 지니고 있다. 시집의 말미에서 시인은 "세상에 이거다 싶은 건 없어도, 지금이 딱이야"라고 말한다. 꼭 완벽한 인생이 아니어도, 조금 허술하고 서툴러도, 오늘 하루를 정성껏 살아가며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선언이다.
어려운 시에 지쳤거나 삶의 온기가 그리운 이들이라면 이 시집을 펼쳐보길 권한다. 아이들의 들썩이는 웃음소리와 선생님의 다정한 잔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팍팍했던 마음 가장자리가 구수하고 따스하게 풀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0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