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수희 <나, 할머니 집에서 잘래>에서 찾은 공감과 조언들
올해 2월 말, 오래 몸담았던 정든 교단을 떠나며 명예퇴직을 했다. 평생을 수학 교사로, 학교 관리자로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이었기에 퇴직 후에는 오롯이 나만의 휴식과 창작의 시간을 누리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인생의 방정식은 늘 예상치 못한 변수를 끌어들인다. 지쳐 쓰러지기 직전인 딸아이 부부를 외면할 수 없어 얼떨결에 두 손주의 구원투수로 뛰어들게 되었다.
초보 할머니의 눈물겨운 시행착오
평생 이렇게 많이 걸어본 적이 있었을까. 사방에 어질러진 장난감과 물건들을 치우고 닦다 보면 아침이 금세 밤이 되었다. 한 달 만에 살이 쏙 빠졌고, 급기야 발바닥 통증(족저근막염)이 생겨 실내화 없이는 발을 디딜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내 몸의 고단함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딸아이의 서운한 반응이었다.
"엄마, 그거 어디다 치웠어요? 물건 위치를 몰라서 찾느라 더 힘들어요."
발에 걸릴까 봐 최소한으로 정리해 주려던 내 마음과 달리, 딸아이는 자기가 세워둔 집안의 질서와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더 견디기 힘들어했다. 정작 치워준 나조차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니 갈등은 깊어졌다. 평생 학교에서 인정받고 살아온 내게 딸의 불만 섞인 눈초리는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깨달았다. 딸에게 필요한 것은 의욕만 앞선 친정엄마의 만능 해결사 놀이가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는 '적정 거리 두기'였다는 것을. 딸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홀로서기를 하려고 버티는 중이었는데, 내가 들어와 그 경계를 허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나는 무조건 치우던 습관을 내려놓고, 무엇이든 딸과 사위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거 치워도 되니?", "아이들 양육 방식은 너희 뜻에 맞출게" 주도권을 부모에게 돌려주자, 집안에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바카라 속에서 만난 깊은 공감
▲바카라표지 ⓒ 렛츠북관련사진보기
그러던 중 지인에게서 바카라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이수희 작가의 에세이 <나, 할머니 집에서 잘래>(2024년 7월 출간)였다. 상담을 전공한 할머니가 손주들을 키우며 겪은 일상과 지혜가 담긴 바카라이었다. 처음엔 시중에 흔한 손주 육아서려니 생각했으나,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지난 6개월간 몸으로 부딪치며 겪었던 시행착오와 깨달음이 그대로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레고 조립을 도와주다가 결국 아빠와 할아버지가 머리를 맞대고 조립하느라 여념이 없고, 아이는 구경꾼이 되어버린다. 작가는 '이 레고는 아이 것인데 설명서를 보고 조각을 찾도록 도와주면 좋겠다'고 외친다.
부모의 조바심은 아이의 성장을 방해한다. 뜀뛰기는 박자에 딱 맞게 뛰어오를 때 가장 멀리 뛸 수 있다.
바카라 속의 레고 이야기는 나를 미소 짓게 하면서도 깊이 반성하게 했다. 손주들이 원하면 즉각 들어주고 내가 나서서 해결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나였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키울 기회를 빼앗는 일일 수 있었다. 초보 엄마 시절에는 조급하게 설명하고 개입했다면, 이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느긋하게 바라봐주는 여유로운 할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조언에 깊이 공감했다.
이수희 작가는 부모와 조부모의 역할 한계를 명확히 짚어낸다. 아이 양육의 일차적 바카라임은 엄연히 부모에게 있으며, 조부모는 절대 부모의 훈육 방식을 앞서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 양육에 관한 일차적인 바카라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손주를 또 맡아봐주면 애들이 부모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게 되잖아요. 부모와 조부모는 일관성 있는 양육 방식을 공유하되, 조부모는 부모의 주 양육 방식에 앞서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혜로운 조부모가 할 일입니다.
나 역시 어릴 적 자식들을 충분히 보살펴주지 못했다는 부채감 때문에 딸네 집에 와서 미리미리 모든 걸 해주려 했다. 하지만 그 과도한 의욕이 오히려 주도적으로 아이를 키우려는 딸에게 불편함이 될 수 있음을 바카라을 통해 다시 한번 명확히 확인했다.
작가의 친정어머니가 손주들에게 까만 비닐봉지를 하나씩 주고 "각자 먹고 싶은 과자를 마음대로 담으라"고 했던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다. 할머니가 골라주는 것이 아닌, 주어진 한계 안에서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바카라임지도록 유도하는 지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자 훈육이었다.
'넉넉한 마음 그릇'으로 손주와 함께 성장하는 삶
아이를 키우면서 좁쌀만 했던 내 마음이 넉넉한 마음 그릇으로 아이와 함께 성숙해 갔다.
오랜 교단에서 수학의 정답을 가르쳤던 나지만, 삶과 육아라는 무한한 영역에서는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참 많다. 지난 6개월간의 손주 육아는 고단한 노동이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의 좁쌀 같던 마음을 다듬고 넉넉한 그릇으로 넓혀가는 뜻깊은 수련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세월아 네월아' 흘러가는 시간은 사실 호기심을 풀어가는 소중한 자람의 시간이다. 판단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그저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주며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는 할머니. 딸아이 부부의 양육을 조용히 지지하며 따뜻한 밥 한 그릇 기꺼이 내어주는 여유로운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 그것이 내 인생 2막의 가장 소중한 목표가 되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9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