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나무 작가의 <그래도 봄날은 온다>를 읽고
대구에서의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딸아이 집의 현관문을 열었다. 짐 가방을 내려놓는 어깨가 묵직했다. 요즘 나의 삶은 대구에서 3분의 1, 그리고 이곳 딸아이네서 3분의 2를 보내는 일상의 연속이다. 두 삶의 터전을 오가는 처지이다 보니, 어느덧 딸아이의 집이 내 집처럼 편안하고 익숙하게 느껴진다.
지친 몸을 추스르며 바카라상 앞으로 다가섰을 때, 눈에 띄는 바카라 한 권이 있었다. 보통의 바카라보다 작고, A4 용지 반 크기보다도 조금 더 작은, 비교적 얇은 바카라. 은나무 작가의 <그래도 봄날은 온다>(2026)
▲은나무 작가의 <그래도 봄날은 온다> 바카라 표지
바카라 표지를 슬쩍 넘겼다. '잠깐 몇 장만 읽어야지' 했던 마음은 첫 문장을 마주한 순간 부질없이 무너졌다. 그 자리에서 단 한 번도 눈길을 떼지 못한 채 단숨에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나는 박복한 여자다."
이 작은 바카라이 다 품어내기에는 벅찰 정도의 비현실적인 한 여자의 일생이 거기 담겨 있었다. 마흔둘의 삶을 스스로 '박복하다'라 칭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 대체 얼마나 깊은 골짜기를 지나왔기에 이런 고백을 던지는 것일까.
벼랑 끝을 전전하던 '82년생 김미영'의 홀로서기
바카라 속의 인물, 82년생 김미영 씨. 그녀는 새아빠와의 갈등 속에 혹독한 사춘기를 겪으며 술과 담배, 비행으로 방황하는 문제 학생이 되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열여덟 어린 나이에 다방과 노래방 도우미를 전전했다. 폭력배의 여인이 되어 지독한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현실 도피성 온라인 게임 중독과 "무당 팔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절망의 바닥을 쳤다.
그러나 그녀는 끊어질 듯한 삶의 줄행랑 속에서도 안간힘을 쓰며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기술을 배웠다. 주변의 작고 따스한 손길들 덕분에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걸어 나왔다.
지금 그녀는 가슴으로 낳은 아들과 배 아파 낳은 아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착한 남편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속으로만 파고들던 한 여자가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겠노라"며 용기를 낸 여정. 총 3장으로 구성된 바카라은 그녀의 개인사에서 시작해 '흙수저' 이야기, 그리고 박복한 모녀의 인생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자신을 직면하며 내면에 단단히 박힌 가시를 하나씩 뽑아내는 치유의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혹여 나의 시선이 그녀에게 또 다른 짐이 될까 몇 번이고 마음을 주춤거렸다. 바카라장을 덮으며 비로소 긴 숨을 내쉬었다. '이런 삶도 있구나.' 감히 그녀의 손등을 가만가만 두드리며 속삭여주고 싶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여기까지 버텨내시느라 오죽이나 힘드셨을까요. 가슴속 굳은살을 이렇게 세상에 드러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지 감히 가늠해 봅니다.’
궁금한 마음에 찾아본 온라인카지노(Brunch) 공간 속 그녀의 프로필 사진에는, 너무도 귀엽고 해맑게 웃고 있는 한 여성이 서 있었다. 다행이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녀가 울고 있지 않아서.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주지 않은 엄마,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전화해 온갖 거친 욕설을 쏟아내는 엄마를 향해 그녀는 하루 두 번씩 안부 전화를 걸어 웃으며 화를 받아준다. 이제는 엄마의 폭언 뒤에 숨은 '자라지 못한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보아주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스스로 어른이 되어가는 그녀는 도리어 독자들에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가지라"며 응원을 건네고 있었다. 지독히도 박복했던 그녀가, 도리어 세상을 향해 따스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선생님..." 골방의 아이들에게 미처 다 주지 못했던 기다림
그녀의 삶을 따라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오랜 교직 생활 동안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지독하게 사춘기를 지나던, 빛이 들지 않던 골방의 아이들.
아버지가 비운 술병과 찌든 이불, 방 한구석에 굴러다니던 라면 그릇 사이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던 한 아이가 떠오른다. 그 폐허 같은 방에서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밤낮 술만 마시는 아버지 밑에서 배가 고파 운동부에 들어갔던 아이.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힘에 겨워 결국 학교를 빠지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그 아이의 집으로 달려가 잠든 아이를 깨워 학교에 데려오곤 했다. 하지만 나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끝내 아이를 지켜내지 못한 채 자퇴 처리를 해야만 했다.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그 한 번의 자퇴 처리는 내 교직 인생에 깊은 주상(走傷)으로 남았다.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바카라, 더 기다려주지 못했던 나 스스로를 향한 원망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 아픈 후회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이후 단 한 번도 아이를 먼저 포기하거나 자퇴시키지 않았다. 내 자식이 사춘기를 지나며 겪는 진통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깊이 깨달았다. 아이들에게는 조급한 걱정보다, 충분히 흔들리고 방황한 뒤 돌아올 수 있도록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날마다 싸우고 물건을 훔치며 사고를 밥먹듯 치던 아이도 끝까지 기다렸다. 어려서 엄마가 집을 나가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 아이는 다정한 말 한마디에도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아이는 나를 '학교 엄마'라 불렀고, 결국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했다.
"죽고 싶다"며 날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오던 아이와 숨 막히는 밀당을 하며 견뎌내던 순간들... 내가 먼저 손을 놓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언젠가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나는 수많은 기다림 끝에 배웠다.
모든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보내는 작은 헌사
바카라을 읽는 내내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 생각났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바카라 속의 김미영 씨 역시 그 시절 내가 가슴으로 품었던 아이들처럼, 바람과 비에 몸을 적시며 비틀거리면서도 끝끝내 줄기를 곧게 세워낸 어엿한 꽃이었다. 어둠 속에서 홀로 신음하면서도 끝끝내 끊어질 듯한 삶의 줄을 놓지 않고 버텨준 아이. 스스로 허물을 벗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그녀와 수많은 아이들의 대견한 삶을 향해, 내 안의 모든 온기를 담아 마음을 전해본다.
‘토닥토닥... 모진 바람 잘 이겨내주었구나. 대견하고, 참 장하다.’
대구와 딸아이 집을 오가는 피곤한 여정길, 뜻밖에 만난 작은 바카라 한 권이 마음에 깊고 조용한 울림을 남긴다. 지독하게 흔들리고 젖어가면서도 끝내 화사한 꽃을 피워내듯, 홀로 상처를 치유하며 어른이 되어간 그녀의 삶 위에 참으로 따스하고 눈부신 봄날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