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용어도 모르는 대표님의 '알까기' 로비 잔혹사

[리뷰] 불꽃 대신 '말맛'이 튄 진흙탕 접대극, 영화 <로비>

by미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짬이 날 때면 넷플릭스 켜는 것이 소소한 낙이다. 극장을 직접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보니 이렇게나마 영화에 대한 갈증을 푼다. 이번에 골라잡은 작품은 배우 하정우가 연출하고 직접 주연까지 맡은 영화 <로비>(2025)다. <롤러코스터>, <허삼관>에 이은 그의 세 번째 연출작으로, 4조 원대 국바카라사업을 따내기 위해 모인 이들의 뻔뻔하고도 처절한 접대 골프 소동극을 담아냈다.



영화는 4조 원 규모의 '스마트 주차장 사업' 입찰권을 두고 기술력은 있지만 로비력은 제로인 스타트업 대표 윤창욱(하정우)과, 저급한 기술력에도 화려한 뒷거래로 사업을 싹쓸이해 온 라이벌 대표 손광우(박병은)가 필드 위에서 맞붙는 과정을 그려낸다.



골프 접대의 정석이란 모름지기 져주고, 나를 낮추며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로비>가 보여주는 필드는 '알까기'와 온갖 야매 술수가 난무하는 그야말로 진흙탕 판이다. 칼날을 겨누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전형적인 대립 대신, 헐거우면서도 능청스러운 인물들의 잔재주가 필드 위를 메운다. 이 독특하고 황당한 판틀을 끌고 가는 세 가지 인물 군상을 들여다보았다.



[첫 번째 인물] 윤창욱, '비수학적' 판에 던져진 정직한 공학도



"내 평생 다 바친 이 사업, 그 비수학적 로비력으로 승부 보고 싶지 않아요."



배우 하정우가 연기한 윤창욱은 기술력 하나만큼은 독보적인 스타트업 '윤 인터랙티브'의 대표다. 전기차 배터리 충전 분야에서 독보적인 '매립형' 원천 기술을 개발했지만, 현실의 벽은 차갑다. 정직함으로만 승부하려 했던 그는 막강한 로비력을 앞세운 라이벌 회사 '손 브라더스'에 번번이 밀려 빚더미에 앉는다. 결국 벼랑 끝에 몰린 그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생전 쳐본 적도 없는 골프채를 잡고 필드로 나선다.



윤창욱은 로비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다. 골프 용어조차 생소해 "나이스 온!"을 연발하다가 "어려우니 그냥 '나이스'만 하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계산과 공학적 logic이 명확한 세상에서 살아온 그에게, 룰을 어기고 상대를 등쳐먹는 '비수학적인 로비'는 낯설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어설픔이야말로 창욱이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매력이다. 굳은 표정으로 어색하게 나이스를 외치고, 죽은 공을 살려내는 꼼수를 배우며 쩔쩔매는 그의 모습은 '로비 없이 이길 수 없는 게임'에서 어떻게든 자기만의 룰을 지켜보려 애쓰는 현대 온라인 게임인의 서글픈 초상과도 닮아 있다.



[두 번째 인물] 손광우와 호식, 더러운 싸움을 이끄는 판의 지배자들



"손대표 로비력이면 삼성스토어에 애플 입장시키죠."



박병은이 연기한 손광우는 윤창욱과 완벽히 대비되는 인물이다. 한때 창욱과 친구였으나 기술을 빼돌려 '손 브라더스'를 차렸고, 잔뼈 굵은 로비력으로 승승장구해 왔다. 그에게 기술력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다. 세상은 정당한 실력이 아니라 '누구의 손을 잡느냐'로 움직인다고 믿는 인물이다.


이런 광우의 판에 특이한 동력이 되어주는 인물이 바로 창욱의 사촌동생이자 인턴으로 투입된 호식(엄하늘)이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학창 시절 맞을 만큼 맞아 눈치 하나는 귀신같이 빠르다는 호식은 "더러운 일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며 희귀템을 구하는 데 천부적인 수완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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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윤창욱(하정우)의 사촌동생이자 인턴인 호식(배우 엄하늘)의 스틸컷 ⓒ 나무위키관련사진보기


광우가 권력의 속성을 꿰뚫어 보고 판을 설계하는 인물이라면, 호식은 필드 밑바닥에서 실체적인 구린 일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야생의 해결사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을 통해 정직한 기술자(창욱)가 왜 번번이 진흙탕 싸움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는지를 선명하고 씁쓸하게 보여준다.



[세 번째 인물] 최실장과 가르시니, 욕망과 허위로 얼룩진 필드의 조연들



"저한테 모두 맡겨 주시면 더러운 일도 깨끗이 할 수 있습니다."



필드 위에는 국바카라사업의 실무를 쥐고 있는 국토미래산업부 최우현 실장(김의성)과, 골프장 대표가 고용한 정체불명의 인물 가르시니(현봉식)가 얽혀든다. 최실장은 장관인 아내 조향숙(강말금)과 이혼 소송 중이면서도 권력의 실세를 쥐고 있으며, 윤창욱의 로비에는 시큰둥하다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골퍼 진세빈(강해림)이 온다는 소식에 단번에 필드로 달려오는 음흉한 인물이다.



여기에 불법적인 일을 아무렇지 않게 대행하는 신부 '가르시니'가 더해진다. 작년까지 스님이었다가 올해 신부가 되었다는 황당한 설정의 그는, 신성해야 할 종교적 신분을 허울로 둘러쓴 채 녹음 전문 기사이자 뒷거래의 중간바카라 역할을 수행한다.



최실장과 가르시니는 이 필드가 얼마나 허위와 욕망으로 찌들어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거창한 정바카라과 권력, 그리고 종교라는 탈 뒤에 숨어 각자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이들의 모습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가볍게 낄낄거리며 보기 좋은 말맛 소동극



<로비>는 날카로운 대립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기승전결의 긴장감을 극대화한 영화는 아니다. 라이벌 간의 맞대결마저도 거창한 칼부림보다는 어정쩡하고 밋밋한 해프닝으로 흘러가기에, 밀도 높은 블랙코미디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불꽃놀이에 불꽃이 빠진 듯한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독기와 재기를 품은 말들이 리드미컬하게 오가는 '하정우표 말맛 소동극'으로서의 매력은 분명하다. 불법과 편법이 판치는 세상에서 순진하게 엉뚱한 짓을 저지르는 인물들의 앙상블은, 무더운 날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웃으며 보기엔 충분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결국 영화 <로비>는 4조 원이라는 거대한 돈의 향방보다, 그 돈을 좇아 잔디밭 위를 볼품없이 굴러다니는 인간들의 슬랩스틱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다. 정직함이 바보가 되는 세상에서 조금은 허술하게, 그러나 꿋꿋하게 제 공을 치려 애쓰는 윤창욱의 모습에 씁쓸하면서도 다정한 미소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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