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사람 슬픈 일 당하면, 가장 큰 위로는..."

구미 금리단길 할매들의 시집 <내 이름을 자꾸 써 보게 된다>를 읽고

by미야

"시 공부하러 온 나는 그때 여고생 그대로인 것 같은데..."


경북 구미역과 금오천 사이,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감성적인 카페와 작은 바카라방들이 소란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각산마을 '금리단길'이 나온다. 최근 MZ세대의 발길이 이어지며 낭만과 문화가 흐르는 이 골목 한구석, 카페 '무이'에서는 얼마 전 가슴 뭉클한 소동이 있었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오느라 제 이름 석 자조차 잊고 지냈던 동네 할머니 김한순·남주연·변영숙·서태형·손순희·신귀애·이정애·이태숙·임귀선·전정미·홍현옥 11명의 어르신이 모여 시집 <내 이름을 자꾸 써 보게 된다>(2024)를 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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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마을 시 쓰는 할매들의 <내 이름을 자꾸 써 보게 된다> 표지 ⓒ 예쓰24



처음엔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던 분들이었다.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쓰는 건지 낯설어 머뭇거리던 손끝. 하지만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구미 각산마을(금리단길) 카페 '무이'에 모인 할머니들은 마침내 자기 안의 수많은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놓기 시작했다.



"사는 게 다 시 아이가"... 붉은 고추 따던 허리를 펴며 얻은 깨달음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나 며느리로 평생을 살아오며 정작 자기 이름 석 자는 잊고 살았던 세월. 시를 쓰기 시작하자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옛날 생각들이 저절로 밀려왔다.



구부리고 고추를 땄더니
허리도 아프고

그러다 고개를 들어 향기 나는 쪽을 봤다
사위어질 꽃 향기가 얼마나 달콤한지
세상에나 이런 거구나

힘들고 지치고 어려워도
사위어질 꽃 향기에 다 녹아내린다

- 김한순, <여름날> 중


끊어질 듯한 허리 통증을 견디며 고추를 따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밀려오던 달콤한 꽃향기처럼, 이분들에게 시는 고된 인생의 굽이마다 숨어있던 소중한 빛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며 "한 번도 강성남인 적 없었던 울 엄마"를 그리워하고,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남겨둔 단감나무와 냉동실에 오랫동안 보관해둔 곶감 이야기를 쓰다 보니 가족 카톡방에서는 "어머니 멋지세요!"라는 며느리의 응원이 전해지기도 했다.



스물넷에 시집와 40년 세월 동안 시부모님과 시동생 셋, 시누이에 아들 둘을 낳아 키워낸 스스로를 향해 "잘 살아줘서 고맙다"라며 보듬는 글(<한순에게>)은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슬픔과 쓸쓸함, 그리고 삶이 건네는 위로



할머니들의 언어는 꾸밈이 없다. 담담하고 직설적이라 도리어 깊은 울림을 준다.



자식들 걱정에 평생 일만 하다 가신 작은어머니의 제사상에 올릴 술잔을 바라보는 마음(<사진 속 작은어머니>), 손길을 쉽게 주지 않던 길냥이 '달이'에게서 느끼는 유대감, 거실 벽에 차마 못을 박지 못하고 접착고리로 액자를 거는 까닭이 "당신 몸(벽)에 상처 내는 것 같아서"라는 아내의 수줍은 고백까지, 일상의 소소한 모든 것들이 시의 언어로 다시 태어났다.



유언장을 쓴다
살면서 많이 울었고, 쓸쓸했고, 고독했다는 것은
비밀로 해주세요
호탕하게 웃으며 잘 살았다는 것만 기억해주세요

- 이정애, <나의 죽음에 관한 시> 중


어느 날은 다가올 삶의 끝자락을 담담히 준비하며 "나를 만났던 당신, 상처 주고 힘들게 해서 미안해요"라며 알록달록 예쁜 옷을 입고 배웅해달라 유언을 적기도 하고, 세상을 떠나는 길에 차려질 자신의 장례식장을 떠올리며 "내 영정사진 보면 웃음보가 터질지도 몰라요, 부조금 고민 말고 차려진 음식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라며 유쾌하고 따스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홍현옥, <내 장례식에 부치다>).



시집을 읽다가 나도 시 한 편을 써본다... 울 엄마 '두곡댁'



할매들의 시를 읽다 보니 내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나의 엄마 '두곡댁'의 얼굴이 겹쳐졌다. 나 역시 펜을 들어 엄마에게 바치는 시를 적어 내려갔다.



남 안 볼 때는 기어서 다니고
남이 보면 지팡이 짚고 점잖빼며 걸어
아흔이 넘어서도 자식들한테 용돈 받지 않고
자립생활 고집스럽게 하며
한번도 신남주인 적 없는 울 엄마


평생을 억척같이 살아내느라 제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한 엄마. 쓰러진 뒤에야 요양원 침대 위에서 일하지 않고 밥을 받아먹는 '호사'를 누리게 된 엄마의 뽀얗고 보들보들해진 손을 만지며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 엄마도 이리 고운 살결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것을.



침대 하나 차지하고 누웠어야
일하지 않고 누워서 밥 받아 먹는 호사를 누린다
감옥살이 같은 요양원 생활 덕분에
피부도 뽀얘지고 손도 보들보들해졌다


평생 밭고랑을 누벼 소나무 등걸 같던 엄마의 손이 요양원에 계신 동안 보들보들해졌다. 그 손을 가만히 만져본다. 그리고 돌아와 내 딸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엄마는 나만 기다리는데
나는 딸만 보고


금리단길 할매들의 시가 내 마음의 물꼬를 터뜨려주었듯, 내 안의 '두곡댁' 역시 여전히 나를 살게 하는 영원한 시이자 내 삶의 고향이다. 울 엄마에게 너무 늦지 않게 가슴 깊은 용서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



"참 잘했어요, 그게 시예요"



시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카페 안은 자주 목이 메고 눈가가 붉어졌다.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잠겼고, 누군가 시를 읽다가 눈물을 흘리면 옆에 앉은 이가 가만히 휴지를 건네며 어깨를 토닥였다.



임수현 시인은 후기에서 "옆사람이 슬픈 일을 당하면 가장 큰 위로는 함께 울어주는 거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는 함께 울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애써 밀쳐냈던 고달픈 과거는 시를 통해 비로소 '사느라 애썼다'라는 따뜻한 위로와 회복으로 바뀌어 갔다.



"이제 숙제 안 내줍니까? 매주 시 생각하다 숙제가 없다고 생각하니 심심하네요."
"다시 숙제 내 드릴까요?"


수업은 끝났지만, 능소화 피어나는 금리단길 카페 한구석에는 여전히 어르신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감돌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또 다른 '나'로 당당히 서게 해주는 과정임을, 자기 이름 석 자를 써 내려가며 시인이 되어간 각산마을 어르신들이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제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하고 살아온 이 땅의 모든 '두곡댁'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 소박한 시집은 따스한 안부이자 깊은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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