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공개된 후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사람과 고기>(감독 양종현)가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며 '오늘의 영화' 3위에 올랐다. 박근형, 장용, 예수정이라는 무게감을 주는 세 명의 노배우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변변찮은 연금과 폐지 수거, 좌판 야채 장사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세 노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이 선택한 삶의 활력소는 다름 아닌 '무전취식'이라는 유쾌하고도 위험한 일탈이다. 영화는 우울하고 무거울 수 있는 독거노인과 빈곤의 문제를 특유의 유쾌함과 위트로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당신은 살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왜 하필 '고기'였나
영화 속 노인들은 슬롯가 요구하는 '품격 있는 노년' 혹은 '얌전한 약자'의 틀에 갇혀 있던 이들이다. "늙었으니까, 세상 사람들 불편하지 않게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가 그냥 죽으라"는 압박 속에서, 이들은 소멸해가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을 묶어준 것은 우식(장용 분)이 훔쳐온 소고기로 화진(예수정 분)이 끓여낸 '소고기뭇국' 한 그릇이었다. 폐지를 줍다 주먹다짐하던 형준(박근형 분)과 우식, 그리고 골목 난전에서 채소를 파는 화진은 이 식탁을 계기로 연대를 맺는다.
고기는 혼자 구워 먹기 어렵고, 예로부터 이웃이 모여 큰일을 치를 때나 나누던 귀한 음식이다.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 고작 몇천 원을 버는 노인들에게 고깃집 문턱은 높았다. 자식에게 잊히고 슬롯에서 소외당한 그들이 살아내고자 할 때,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든 매개체가 바로 여럿이 모여 함께 먹어야 제맛 나는 '고기'였던 셈이다.
우식의 진두지휘 아래 세 노인은 본격적인 무전취식 감행에 나선다. "내일 저녁에 뭐하셔들?"이라는 한마디로 시작된 이 일탈은, 늙어서도 여전히 뜨거운 순수함과 열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다.
물론 범죄를 미화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영화 속 노인들은 '돼지고기만 먹기', '장사가 잘되는 집만 가기', '소주는 딱 한 병만', '비싼 고기는 금물'이라는 나름의 원칙을 세운다.
사실 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몹시 쓸쓸하다. 폐지를 주워 버는 돈은 몇천 원뿐이고, 자식과 연락이 끊긴 일상은 곤궁하다. 그러나 세 사람은 그늘 속에 주저앉아 눈물 짜지 않는다. 우울함에 침잠하는 대신 무해한 유쾌함을 무기로 내세운다. 도망가면서도 키득거리며 "맛있었지?" 하고 묻는 장면처럼, 극 전체를 관통하는 코믹함과 위트야말로 신파를 딛고 영화에 생동감과 설득력을 실어주는 가장 큰 힘이다.
수십 년을 법대로 살던 화진은 첫 도망길에서 숨을 헐떡이며 외친다.
"살아있어, 살아있어! 나만 그래?"
이에 우식은 "죽어라 뛰니까 젊어진 것 같어"라며 받아치고, 형준은 "살맛 난다"며 키득거린다.
이들의 반칙을 단순히 도덕적 잣대로만 재단할 수 있을까. 7년 만에 연락해 영양실조로 쓸쓸히 굶어 죽어갔던 친구 학선의 임종을 지켜봐야 했던 형준의 서사는, 이 일탈이 '착한 죽음' 대신 '살아 숨 쉬는 인간'이 되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었음을 대변한다.
뒤틀린 복지 향한 일침
▲영화 <사람과 고기> 포스터나무위키
영화에서 가장 통렬한 대목은 독거노인 우식에게 슬롯복지 단체가 '수의'를 선물하는 장면이다. 당장 오늘 밤 입에 넣을 고기 한 점이 없어 거리를 헤매는데, 죽은 뒤에 입을 옷을 펼쳐 들고 인증 사진을 찍는 복지의 민낯은 실소와 씁쓸함을 자아낸다.
결국 우식은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그 수의마저 태워버린다. 그에게 진짜 필요했던 것은 죽음 이후의 포장이 아니라, 따뜻한 밥 한 끼와 자신의 반려묘를 돌봐줄 손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공급자 중심의 복지 제도를 향해 일침을 가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우식이 남긴 시 '청춘'을 장용 배우의 담담한 목소리로 낭독하며 막을 내린다.
목청껏 웃고 싶어서 목놓아 울어본다 / 살기도 구찮고 죽기도 구찮다 / (중략) / 시린 가슴 덥혀지게 불이나 질러볼까 / 눈 떠보니 아침 / 햇살은 공평하다. — 영화 속 우식의 시 <청춘> 중에서
돈이 없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세상의 눈치를 보며 겸연쩍어했던 노년의 시린 가슴이 스크린을 데운다. 후반부, 판사의 집에 불을 지르고 잡혀갔으나 간암으로 풀려나서 "셋이서 무전취식을 하던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 뛰고 행복했다"던 우식의 고백은 그래서 더 애틋하다.
연기 인생 도합 160년이 넘는 박근형, 장용, 예수정. 세 노배우의 실제 삶의 궤적과 영화 속 서사가 겹쳐지며 만들어낸 몰입감은 대체 불가능한 감동을 선사한다. 주름진 얼굴에 머무는 시선 하나하나가 배우들이 살아낸 세월의 무게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곧 노인은 소멸할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는 강력한 서사가 된다.
특히 영화의 막바지, 할머니의 무전취식 사실을 알고 원망하던 손자가 "그냥 우리 한번 안을까?"라며 황급히 돈을 찾아다 주려는 화진을 안아주는 장면은 인상 깊다. 단절되었던 세대 간의 연대가 어떻게 다시 시작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치스러운 사건을 통해 비로소 손자는 할머니를 '그저 늙은 노인, 나를 위해 무조건 다 해줘야 하는 사람'이 아닌 '욕망과 아픔을 가진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우리도 그들처럼 결국 늙어간다. 그러니 이들을 향한 손가락질을 멈추고,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고기 굽는 불판 앞에서 그들이 시린 가슴을 데우기 위해 스스로 불을 지르지 않아도 되도록, 우리 슬롯가 모두에게 공평한 햇살을 나누어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