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오디오북을 재생했습니다. 소설 곳곳에 장치된 성석제 작가 특유의 코믹한 포인트에 피식피식 웃음이 터지더군요.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은 지독하게도 나의 유년과 닮아 있었습니다. <투명인간>(2014)을 읽는 동안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유년의 기억, 잊고 있던 그 아름다운 시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성석제 장편소설 <투명인간> 표지
고무다라이와 시게또, 그 시절 우리의 풍경
가마솥에 물을 데워 빨래판을 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뜨거움을 견디던 시간. 조금 더 지나서는 농약치기용 커다란 고무다라이(고무대야)에 더운물을 담아 아랫방 구들목에서 오남매가 차례대로 들어가 때를 불리고 밀던 풍경. 마지막에 깨끗한 물로 헹구며 마무리하던 그 시절의 '연례행사'가 떠올라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 집 앞에도 제법 큰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그곳은 최고의 놀이터였지요. 추운 줄도 모르고 못둑에 불을 피워 손을 데워가며 썰매, 아니 '시게또'를 겁나게 빨리 달리기도 했습니다.
다만 오빠들도, 아버지도 내 놀잇감에는 관심이 없었던 탓에 나는 그 가녀리고 날렵한 '시게또 날'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긴 못을 장착해 영 속도가 나지 않는 시게또를 겨우 타고 놀며 속상해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습니다. 정월 대보름날, 얼굴과 손이 온통 새까매지는 줄도 모르고 깡통에 송진을 넣어 휘휘 돌리던 불놀이도 함께 말입니다.
소설 속 '연탄가스' 에피소드는 가슴을 아찔하게 만들었습니다. 시골에서 자랄 땐 군불을 때서 가스를 마실 일이 없었지만, 고등학교 시절 대구로 유학을 나와 자취를 시작하면서 연탄을 만났습니다. 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자다 말고 몇 번씩 일어나 살피던 밤들. 어느 날 늦게 귀가했더니, 나를 기다리다 잠든 친구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헤롱헤롱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급히 김칫국물을 퍼 와 들이붓고 뺨을 때린 덕에 겨우 깨어났었지요.
소설 속 명희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을 아픈 사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만약 내 친구도 그때...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며느리에서 시어머니로, 예측 불허의 화자 전환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는 독특한 전개 방식에 있습니다. 며느리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하다가, 시어머니가 화자가 되고, 큰아들 백수가, 동생 금희가 화자가 됩니다.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굳이 헤아리려 애쓰지 않아도, 그들의 생각을 바로 들여다볼 수 있어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석수가 만수를 만만하게 여기는 수많은 장면조차 세월을 이만큼 지나오고 보니 그리 밉지만은 않고 나름 코믹하게 읽혔습니다.
특히 나를 사로잡은 인물은 할아버지였습니다. 서울 유학 시절 불온사상으로 일경에 끌려가 고생한 후 산골로 야반도주한 인물. 그는 늘 '염치'를 강조했습니다.
"천지지간 만물지중 인간이 가장 귀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 염치를 알기 때문이다. 염치는 제 것과 남의 것을 분별하는 데서 생긴다... 훔치고 나면 너는 네 것을 모두 도둑맞게 된다. 내 삶을 도둑맞는다."
"온전한 사람 사내 대장부라면 제 식구 형제를 끝까지 바카라임진다."
할아버지의 이 가르침은 결국 주인공 '만수'가 끝까지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이끈 가훈이자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자식 농사는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아들은 어긋났을지언정, 그의 정신은 손자 만수에게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반면 동생 '석수'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로 살아갑니다. 만수를 만만하게 보고 이용하면서도, 시스템의 일원이 되어 살아남겠다고 다짐하는 석수. 하지만 독자의 입장이 되니 석수의 그 모진 태도조차 나름의 생존 방식으로 읽혀 미워할 틈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만수의 순박함과 헌신이 너무 거대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말년까지 투명인간이어야 합니까"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만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면서, 제 가슴은 안타까움과 속상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중반부까지만 해도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찌릿해져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후반부에 이르면 만수의 인생이 너무 답답하고 푹푹 빠지는 수렁이라 외려 눈물이 쏙 들어갔습니다.
'이놈의 세상은 왜 이렇게 대를 이어 끝까지 가혹해야 하나' 하는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그만큼 고생했고,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다면... 그 말도 안 되는 '투명인간' 자취 말고, 근사한 말년 하나 장만해 주면 어디 덧나는가 싶어 작가에게 따지고 싶기까지 했습니다.
하루 20시간 가까이 일하며 10년 동안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는 삶. 세차장에서, 배달판에서 청소가 천직이라며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며 일하던 만수. 결국 석수의 아들 태석이 자신을 키워준 작은어머니(만수의 아내)에게 심장을 이식해 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먹먹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마구 소비하는 지금, 그 시절이 무서워지는 이유
1960년대부터 이어지는 한국의 근현대사, 혹은 압축 경제사가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회충 검사를 위한 채변검사, 눈물바다였던 국민학교 졸업식, 혼분식 장려와 봉긋하게 부풀어 고소했던 옥수수 급식빵, 배움에 목말랐던 가난한 내 친구도 다녔던 산업체 야간 부설학교까지.
모두 내가 직접 겪었던 일들입니다. 그토록 모든 것이 부족하고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이 넘치고 남아돕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이렇게 마구 소비하고 마구 남겨 버려도 되는지... 그 어렵던 시절을 통과해 온 세대만이 느낄 수 있는 서글픈 감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임순례 영화감독의 평처럼, 과연 우리는 이 물질만능의 한국 슬롯에서 투명인간이 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낼 자신이 있을까요.
"사는 게 훨씬 쉽다,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작가는 바카라의 말미에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살을 하거나 아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지기로 선택한 사람들 중에 투명인간이 된 사례가 더러 있다.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가?"
그 질문에 만수는 우리를 대신해 이렇게 답하는 듯합니다.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죽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사는 게 훨씬 쉽다. 나는 한번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게는 아직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성석제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고, 그저 '함께 있다', '함께 느끼고 있다'는 것을 써서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카라을 덮으며 만수의 고달픈 인생 여정을 활자로 마주하는 동안 내가 얻은 것은, 결국 그 모진 세월을 우리가 '함께 통과해 왔다'는 공동체의 연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