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옥수수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리뷰] 김영하 단편 소설 <옥수수와 나>

by미야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이제 그거 아시잖아요." "글쎄,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본문 12p 중)


소설가 김영하의 단편 소설 <옥수수와 나>(2012)는 황당한 신경증을 앓고 있는 한 소설가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인 ‘나’는 어느 날부터 자신이 '옥수수'라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정신과 의사는 그가 옥수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인지시키지만, 주인공의 공포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내가 옥수수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아무리 잘 안다고 한들, 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닭'들이 나를 옥수수로 보고 쪼아 먹으려 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황당하고도 유머러스한 설정은 김영하 작가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세련된 문체를 타고 현대인의 본질적인 불안을 날카롭게 관통한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닭장’ 속에서

소설 속 주인공은 한때 이름을 날렸던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지금은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다. 주변 환경 역시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출판사 대표는 돈을 무기로 끊임없이 마감을 재촉하고, 전처와의 관계는 미련과 원망으로 복잡하게 꼬여 있으며, 새로 만난 여인과의 관계도 위태롭기 짝이 없다.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모두 그에게서 무언가를 뜯어내고 소비하려는 존재들로 묘사된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나의 가치는 내가 결정하며,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확신이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세상이 바라보는 우리는 그저 언제든 소비되고 쪼여 먹힐 수 있는 하나의 '옥수수', 즉 상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시장 논리와 타인의 평판에 의해 나의 가치가 매겨지는 슬롯에서, 개인의 주체성이란 얼마나 나약한가. 작가는 타인의 평가에 휘둘려 자아를 상실해 가는 현대인의 비극을 정확히 포착한다. 내가 아무리 인간이라고 주장해 봤자, 세상이 나를 옥수수로 취급하면 결국 옥수수가 되고 마는 냉혹한 소외의 메커니즘이다.


이 기이한 소설은 결국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 체제 안에서 하나의 '소비재'로 전락해 버린 현대 예술가의 실존적 위기를 다룬 세련된 우화다. 현대의 예술가는 대중문화와 거대 자본이라는 거대한 '닭'들 앞에서 자신의 독창성을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 쳐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맥락에서 주인공이 앓는 옥수수 강박증은 단순한 개인의 정신병이 아니다. 주체성을 상실하고 소비될 위기에 처한 현대 예술가의 존재적 불안이 가장 극단적이고도 상징적인 형태로 발현된 셈이다.


특히 주인공이 도망치듯 떠난 뉴욕이라는 공간은 이러한 자아 해체를 가속하는 영리한 장치다. 세계 자본의 심장부인 그곳에서 주인공은 영어라는 낯선 언어의 벽에 부딪힌다. 타인과 정상적인 소통을 하지 못하고 철저히 '말을 잃은 존재'가 될 때,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유일한 수단을 잃어버린다. 평론가들이 지적하듯, 소통과 언어의 단절은 곧 자아의 실종으로 이어진다. 내가 누구인지 세상에 설명할 길이 없어질 때, 그 내면의 빈틈을 타 '내가 정말 옥수수일지도 모른다'는 광기 어린 공포가 완성되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위악, 혹은 구원

김영하는 이 작품으로 2012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인간관계의 파괴를 도시적 문명과 제도의 횡포로 읽어내는 작가의 시각, 여기에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이라는 하나의 길을 보여준 소설적 여정"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주인공은 출판사 대표가 마련해 준 낯선 뉴욕의 아파트에서 기괴한 상황에 직면하지만, 오히려 그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역설적으로 창작의 에너지를 얻는다. 닭에게 쪼여 먹히지 않기 위해, 자신이 옥수수가 아니라 '글을 쓰는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다. 결국 <옥수수와 나>는 단순히 미친 작가의 해프닝을 그린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다. 상실된 자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대인의 초상이자, 그 지독한 불안마저도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예술가의 숙명을 그린 잔혹 동화에 가깝다.


"인간은 자기가 옥수수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다. 그러나 결국엔 모두가 누군가의 모이가 되어 사라질 뿐이다."



2026년 지금, 우리는 여전히 옥수수다

소설이 발표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 작품이 주는 시의성은 퇴색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짙어졌다. 소셜 미디어(SNS) 속 '좋아요'의 개수로 나의 가치가 증명되고, 타인의 끊임없는 평가와 모니터 뒤의 시선에 저울질당하는 현대 슬롯에서 우리는 모두 늘 불안하다. 온라인 게임에서, 학교에서, 혹은 슬롯적 관계망 속에서 우리는 언제 쪼여 먹힐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옥수수의 삶을 자처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당장 거대한 슬럼프와 번아웃, 혹은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리고 있다면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를 펼쳐보기를 권한다. 닭을 피해 도망치는 주인공의 처절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질주를 낄낄거리며 쫓아가다 보면, 문득 거울 속 내 모습을 냉정하게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당신은 지금, 타인의 닭장 안에서 정말 안전합니까? 당신은 정말 옥수수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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