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돈으로 보일 때, 김애란이 지은 집을 방문했다

[리뷰] 사람의 온도를 품은 일곱 채의 집,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

by미야

타인의 방을 노크하는 일, 그 지리멸렬함과 서글픔에 대하여



언제부턴가 풍경이 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아파트 단지의 브랜드와 평수, 그리고 '상급지'와 '하급지'라는 차가운 부동산 계급 용어가 공기처럼 떠다닌다. 우리는 나빠서 틀리는 게 아니라 몰라서 틀리는 법이라지만, 언제나 '경제적 인간'으로만 살아가도록 등 떠밀리는 이 시대 속에서는 알면서도 서로에게 속물이 되고 만다.



김애란 작가가 8년 만에 묶어낸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북토크 당시 작가가 예고했던 대로, 이번 소설집의 중심을 관통하는 화두는 '돈과 이웃'이다. 일곱 편의 단편이 담긴 이 바카라은 한 권의 정성스러운 '이야기의 집'과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은 누군가의 공간을 방문하거나, 자신의 내밀한 공간을 타인에게 노출하며 내적 갈등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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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표지 ⓒ 문학동네관련사진보기


연민 속에 숨어 있던 우월감, '좋은 이웃'이라는 질문



단편 <좋은 이웃>은 타인을 향한 연민과 은밀한 속물근성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우리들의 이중적인 내면을 가장 잘 보여준다. 독서지도사인 서술자는 늘 안타깝게 여기던 장애 학생 '시우'가 환경이 어려운 줄로만 알았다가, 넓은 평수의 자가로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듣고 묘한 허전함과 휑함을 느낀다.



"마음이 허전하고 휑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내가 베풀어온 도덕적 뿌듯함의 밑바닥에 실은 은밀한 '경제적 우월감'이 주춧돌처럼 고여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 소설은 시우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이 시대에 '좋은 이웃'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가능한 일인가.



"그런 걸(공동체, 이웃, 연대) 믿으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욕망은 오직 생존을 위한 정당한 '욕구'처럼 느껴지는 마음의 위선. 작가는 이를 손가락질하기보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허영과 질투의 내면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자고 제안한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이 독백같은 외침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백과 다르지 않다. 집을 구하거나 팔 때, 모르는 이들에게 내 공간과 삶의 내력을 낱낱이 보여주어야 하는 지리멸렬한 노출의 치욕을 견디며, 우리는 거주지에 따라 '급'이 아니라 '종(種)' 자체가 나뉘는 듯한 서글픈 현실을 지나간다.



이국의 공간에서 마주한 노골적인 계급, 그리고 실존의 연기



타인의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때로 내 삶의 얇은 테두리를 뒤흔드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 <홈 파티>의 이연이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지닌 오대표의 우아하고 안정적인 집에 초대받았을 때가 그렇다. 이연은 집안 곳곳의 가구들이 자아내는 미감 앞에서 자신과 그들 사이에 그어진 미세한 선을 본능적으로 의식한다.



그 숨 막히는 공간 속에서 이연은 술에 취하지 않기 위해, 주정을 부리지 않기 위해 초인적인 힘으로 정동을 붙잡는다.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그건 세상의 인정이나 사랑과 상관없는 (...) 말 그대로 실존의 영역임을 알았다"던 문장처럼, 우리는 저마다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매일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아슬아슬한 연기를 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쩔쩔맴은 <숲속 작은 집>에서 이국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회사까지 그만두고 떠난 해외 여행지에서 주인공은 값싼 물가와 저렴한 숙박 비용에 만족하지만, 이내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현지 숙소 관리인을 마주하며 불편함을 느낀다.



"물가 낮고 물건 저렴한 건 좋지만, 그걸 만드는 노동력이 싸다는 사실만은 여전히 어색"하다는 자각. 여행지의 숙소를 떠나며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방을 정돈하는 습관을 두고 주인공은 "그럴 때 나는 좀더 잘 살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아직 무언가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았단 실감이었다"라고 서술한다. 남에게 내 비루함을 들키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이자, 자본의 냉혹한 논리 속에서 어떻게든 '나'라는 주체의 성실함을 증명해 보이려는 서글픈 자부심인 셈이다.



언어의 상실과 낯선 환대, '안녕'이라는 뒤늦은 깨달음



표제작인 <안녕이라 그랬어>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이 번역의 과정에서 겪는 '누락과 상실'을 다룬다. 오래전 팝송 <러브허츠>의 "I'm young"이라는 가사를 "안녕"으로 잘못 알아들었던 기억. 그리고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영(young)'하지 않은 나이가 된 은미가 화상 영어 강사 로버트와 짧은 단어로 소통하며 서로의 상실을 어렴풋이 짐작하는 이야기다.



과거 오사카에서 열린 한미일 스카우트 합동 잼버리에 참여했을 때가 문득 떠올랐다. 영어도 일어도 서툴렀던 나는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고, 마음을 온전히 읽어내지 못해 참 답답하고 조심스러웠다. 통역에서 오는 누락과 상실을 실감하던 외로운 순간들.



하지만 소설은 말한다.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엉뚱하고도 따뜻한 가능성이 있다고. '잘 가'라는 이별의 순간에, '평안하라'는 기원을 담아, '반갑다'는 어조로 중얼거려 보는 "안녕". 나이 들어 마음이 넓어지는 대신 얇아져서 쉽게 찢어지는 어른들이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사려 깊은 인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 (...)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


이어지는 <빗방울처럼> 역시 더는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한 막막한 벼랑 끝에서, 나를 섣불리 알지 못하는 낯선 도배사의 담담한 태도로부터 위안을 얻고 "살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아픈 여정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무언가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이라지만, 그 지난한 기다림 끝에 결국 아직 자기 자신이라는 마지막 '가진 것'이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문학이 우리를 돕는, 표 안 나고 슬픈 속도



최근 방영된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김애란 작가는 AI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것을 '망설임'이라 말했다. 인간의 결함과 망설임은 한계가 아니라 미덕이자 개성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가슴에 오래 남았다.



오늘날 유튜브를 1.5배속으로 돌려보며 타인의 고통마저 빠르게 해치우려는 세상에서, 문학은 홀로 다른 속도를 고집한다. 어떤 진실과 고통은 반드시 그 사람이 말하고 싶어 하는 속도와 분량만큼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문학이 삶의 문제를 단칼에 해결해 주지 못할지라도, 생색내지 않는 형태로 천천히 우리를 돕는다는 작가의 말은 다정했다.



"슬롯적 주제를 집의 뼈대나 콘크리트로 세우지 않고, 독자분들이 무슨 집인지 모른 채 들어왔다가 그 집을 나갔을 때 슬롯적 공기가 몸에 냄새처럼 배어 바깥공기와 만나 환기되는 식으로 상기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애란이 지은 일곱 채의 소설집에서 흘러나와 내 몸에 배어든 공기는 어떤 냄새일까. 그것은 아마도 타인의 방 앞에서 슬며시 노크를 망설이는 냄새, 그리고 얇아진 마음으로 서로의 안녕을 가만히 빌어주는 정결한 사람의 온기일 것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47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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