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시절'을 지나고 있는 당신에게

만화 <그림을 그리는 일>을 읽고...이런 삶의 태도를 미리 알았다면

by미야

피곤했지만 도서관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특히 세 돌 지난 손자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걷는 요즘의 도서관 길은 내게 가장 큰 행복입니다.



2층 종합자료실로 올라가며 문득 생각에 잠겼습니다. '언제쯤이면 이곳에 앉아 아무 걱정 없이 온종일 바카라을 읽다 집으로 갈 수 있을까.' 막상 그런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면 그마저도 별 의미 없어질지 모를 일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 여백에 대한 기대가 간절합니다.



그날은 특별히 빌리고 싶은 바카라이 있어 간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번 대출한 바카라을 반납하러 간 길이기에 자료실을 휘뚜루 둘러보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만화 코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구에 다녀온 여독이 가시지 않아 긴 글을 읽기에는 무리였던 차에, 슬쩍 들여다본 내용이 마음에 와닿아 바카라 한 권을 빌려왔습니다. 초록뱀 작가의 만화,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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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일 표지 ⓒ 창비관련사진보기


마침 일요일이었던 부처님 오신 날, 잠시 짬이 나서 바카라을 펼쳤습니다. 만화인데도 읽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학창 시절 시험이 끝나면 만화방에서 20여 권을 쌓아두고 새우깡을 먹으며 해방감을 만끽하던 기억이 스쳤습니다. 그때는 글과 스토리에만 집중하며 속도감 있게 읽었는데, 이번엔 이 만화바카라 한 권을 붙잡고 반나절을 보냈습니다. 대사 하나, 그림 한 칸에 담긴 작가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자꾸만 걸음이 멈췄기 때문입니다.



"그림은 그냥 기술이 아냐. 너를 드러내는 일이야."


만화 속 형의 대사처럼, 어느새 저는 작가가 꺼내놓은 마음의 결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망칠 땐 끝까지 망쳐봐"


"석고상에 집중하기 전에 네 마음에 먼저 집중해봐."


세상 모든 일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나는 왜 그 일을 하고자 하는지' 본질부터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저는 글을 쓰기 전에 내 마음에 집중하고 있었던가 돌아보았습니다. 그저 나라는 존재를 표현하고 싶고, 여전히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싶어 조급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깊어질 무렵, 또 하나의 대사가 가슴을 툭 쳤습니다.



"망칠 땐 끝까지 망쳐봐. 완성도 아닌 그림을 망칠까봐 더 못 건드리거나 조금 망쳤다고 다시 시작하면 다음에 또 같은 자리에서 멈추게 돼. 그럴 때 숨 한번 참고 끝까지 가봐. 더 망쳐봐."


그림 동아리 형이자 그림 선생의 말 앞에서 한동안 멍하니 멈춰 서 있었습니다. 저는 37년이 넘는 교직 생활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제자들에게 이런 삶의 태도를 가르친 적이 있었던가 싶었습니다. 그저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행복해질 거라는, 뻔하고 막연한 믿음만 심어주지 않았던가요.



망쳤을 때는 끝까지 망쳐보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숨 한번 참고 끝까지 가보라고 왜 말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회한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수학 교사였던 저는 아이들에게 "답을 찾은 사람처럼 그냥 풀어라, 풀다 보면 원리가 보인다"고 채찍질해 왔습니다. 제 삶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정답을 찾아 살아온 날들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공식대로 풀어도 틀린 답이 나왔다."


만화 속 문장처럼, 삶에는 공식대로 풀어도 틀린 답이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전제 조건을 놓쳤거나, 삶이라는 살아있는 생물이 가진 수많은 변수를 간과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제 생각의 틀에 갇혀 세상 모든 상황을 다 꿰뚫어 보고 있다고 오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되돌아갈 문을 스스로 닫아 걸고 걸어 나온 길



때로 삶이 두려울 때면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준비가 안 되었을 때, 차라리 땅으로 꺼지거나 사고라도 나서 이 상황을 비껴가길 바랐던 어린 날의 도피 심리 말입니다. 다 늙은 지금도 가끔 불안한 일이 생기면 시험장을 몰라 헤매는 꿈을 꿉니다. 남성들이 군대에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꾸거나, 담배를 끊은 사람이 다시 담배를 태우는 꿈을 꾸듯 말입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저는 종종 배수의 진을 치곤 했습니다.



"어딘가로 나아갈 때 '문은 항상 등 뒤에서 닫힌다.'"


어딘가로 나아가려면 뒤에 남은 문을 스스로 닫아버려 되돌아갈 여지를 없애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명예퇴직 또한 그러했습니다. 미련이 남아 떠난 후 후회할까 봐, 저는 병가나 휴직 대신 퇴직이라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만약 그 문을 열어두었다면 되돌아갈 핑계를 찾느라 내 남은 시간을 모두 허비했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등 뒤의 문을 쾅 닫아 걸어 잠그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고, 늘 내 안에 남아 빛나는 것, 그건 그림이 아니라 바로 그 시절의 나였다."


이 대사를 읽으며 비로소 위안을 얻었습니다. 아이들 속에서 좋은 선생이 되고자 분투했던 그 치열했던 시간들 말입니다. 비록 그것이 내게 부귀영화나 거창한 명성을 주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시절의 정성은 내 안에서 여전히 바래지 않고 빛나고 있었습니다. 퇴직 후의 나를 지탱하는 힘 역시 그 빛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글들이지만 오늘도 쓴다



웹툰 속 작가의 고민은 지금 내 글쓰기의 고민과 무척 닮아있었습니다.



"넌 한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거야. 네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표현되지 않아."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바카라 읽기, 글쓰기, 여행... 그동안은 무언가 성취나 도전을 위해 '적당히'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표현되지 않는다는 말은 여전히 저에게 무거운 화두를 던집니다.



인터넷 세상에는 발에 차일 정도로 글이 많고, 그만큼 쉽게 잊힙니다. 어떤 작가는 인터넷 공간에 글을 올리는 것을 '끝이 없는 거대한 지하 세계의 어둠 속으로 글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꾹꾹 눌러쓴 글들도 발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저 밑바닥으로 떨어져 사라지는 것만 같습니다.



내 필력의 한계를 잘 알면서도 이상하게 포기가 되지 않습니다. 치열하게 읽고, 읽은 것들을 내 생각으로 정리하여 오늘도 씁니다. 글 쓰는 노예를 자처할지언정 그냥 쓰는 것입니다. 작가는 바카라의 말미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좋아하던 일이자 유일하게 잘하고 싶었던 일을 원망하게 된다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 전환점은 그림을 그만두게 되더라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인 것에 있습니다."


제가 글쓰기를 원망하지 않도록, 이제는 천천히 조용히, 할 수 있는 만큼만 속도를 조절하려 합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이 길을 오래 완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무언가 하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시절'을 지나고 있다면, 이 따뜻한 만화 한 편을 읽어 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어딘가로 나아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당신의 발걸음을 응원하는 든든한 지원군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비록 가던 길을 멈추거나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돌아보았을 때 '꽤 괜찮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우리를 다독여줄 테니까 말입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37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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