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돌 손자의 투정과 '관종' , 외롭다는 신호?

그림바카라 《빨개져 버린》을 통해 들여다본 인간 본연의 결핍과 사랑

by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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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넘기면 붉은색이 양쪽에 모두 이리저리 칠해져 있다. 그다음 쪽까지. 그리고 이야기 중간중간 흑백 그림 속에 빨강이 강렬하게 칠해져 있다. 엄마의 구두, 자동차 불빛, 주인공 눈동자의 핏발, 설거지하는 엄마의 고무장갑, 안대를 하고 오랜만에 관심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주인공의 귀, 분식집 아주머니의 앞치마와 떡볶이 국물, 코를 파서 나온 코피, 의사의 진단에 빨개진 주인공의 얼굴, 일진 언니들의 입술, 그리고 마지막 세 쪽까지…….


그림바카라 작가 '아하'는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타오르는 마음을 이처럼 '빨강'으로 강렬하게 그려내었다.



이 만화를 보니 문득 큰손자 녀석이 생각났다. 얼마 전, 어린 동생이 아직 숟가락질을 못 해서 내가 손을 잡아주며 가르쳐 주었더니, 가만히 보던 큰손자가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할머니, 나도 아기처럼 숟가락 잡아주세요." 평소에는 혼자서도 밥을 씩씩하게 잘 먹는 녀석이다. 동생에게 쏟아지는 할머니의 사소한 눈길과 관심이 못내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동생에게 해주는 것들을 죄다 자기에게도 해달라며 떼를 쓴다. 아빠는 그런 큰애의 행동을 '퇴행'이라 생각했는지 혼자 하라며 엄하게 타이르지만, 할머니인 나는 그 마음이 예뻐 슬며시 요구를 들어준다. "동생이 하는 거 보니까 우리 진이도 하고 싶었구나? 이렇게?" 그러면 녀석은 언제 투정을 부렸냐는 듯 배시시 웃으며 대답한다. "응,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어."


이제 겨우 세 돌이 지난 아이조차도 가족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어 동생의 행동을 따라 하는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사춘기 아이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처음엔 눈이 아파서 안대를 착용했지만, 그것 덕분에 친구와 가족, 선생님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주인공. 눈이 다 나았는데도 그 달콤한 관심이 좋아 안대가 까맣게 더러워질 때까지 계속 끼고 다니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쩌면 너무 외로워서 귀여운 사춘기의 몸짓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문득 두려운 생각도 든다. 관심받고 싶다는 이 당연한 욕구들이 계속해서 거절당하고 외면받으면, 아이들은 결국 더 삐뚤어지고 난폭한 방식으로 그 요구를 표현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요즘 우리 슬롯에는 '관종'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인다. '관심 종자'의 줄임말로, 타인에게 관심이나 주목을 받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이르는 신조어다. 오직 주목받기 위해 안달 난 사람들을 보며 대중은 손가락질을 하곤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종 현상'은 단지 개인의 독특한 기행이나 성격 결함에만 머물지 않는다. 유튜브나 SNS 등에서 자극적이고 반슬롯적인 콘텐츠로 조회수를 올려 돈을 버는 이른바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의 부작용으로 이어지며 심각한 슬롯적 문제를 낳고 있다.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차별적으로 침해하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연예인이나 타인을 향해 무차별적인 악플을 쏟아내 생명까지 버리게 만드는 잔인한 '사이버 불링'의 밑바닥에도 결국 기형적으로 뒤틀린 관심의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랫폼의 규제를 강화하고 법적인 처벌 수위를 높이는 제도적 브레이크도 물론 시급하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댓글을 달아 반응해 주기보다 '조용히 신고하고 무관심으로 대처하는' 대중의 성숙한 미디어 수용 태도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가 먼저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우리 슬롯가 이토록 지독한 '결핍의 슬롯'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관심 못 받아 환장한 사람'이라며 비난의 돌을 던지기 전에, 왜 저들이 저토록 자극적인 방식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으려 하는지 그 마음의 빈 곳을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치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는 아하 작가는 자신의 첫 그림바카라을 세상에 내놓으며 "나의 치부까지도 관심받고 싶다"고 고백했다. 솔직하고 위트 있는 고백이지만, 가슴 한구석이 찡해오는 문장이다.


결국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이기에, 평생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며 애쓰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세 돌 지난 손자의 투정도, 안대를 벗지 못하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도, 화면 너머에서 외쳐대는 현대인들의 비정상적인 몸짓도 실은 "나를 좀 봐달라"는 외로운 신호가 아닐까.


따뜻하고 진정한 관심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건강하게 성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을 듬뿍 받아 마음의 허기가 채워진 사람만이, 비로소 자신의 시선을 밖으로 돌려 타인을 품어줄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는 법이다. 오늘 밤에는 칭찬을 갈구하던 손자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주며, 내 주변의 외로운 '빨강'이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눈길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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