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버이날, 세상이 온통 카네이션의 붉은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도 카네이션 한 송이가 피어났습니다. 치매로 요양원에 모신 엄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채비를 하던 중, 딸아이가 수줍게 선물을 내밀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림바카라이었습니다. 캐릭터가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바카라. 나이가 들면서 작은 글씨를 읽는 게 힘겨워 종이바카라보다는 오디오북을 즐겨 듣는 우리 부부를 배려한 딸아이의 세심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제목이 자못 '어버이날'스럽습니다.
<나의 엄마> 그리고 <나의 아버지>
엄마에서 엄마로
'엄마'. 평생 수도 없이 불렀던 그 이름입니다. <나의 엄마>라는 표지의 글자는 독특하게도 '연결점'으로 이어져 씌여 있습니다. 엄마에게서 나로, 그리고 다시 내 딸에게로 이어지는 생명의 연결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아기가 태어나 처음 내뱉는 말 '맘마'. 그것은 생존을 위한 최초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곧이어 터져 나오는 말 '엄마'. 무서워도, 화가 나도, 슬퍼도, 외로워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이름을 부릅니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엄마는 나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이 오면,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오겠지요. 하지만 바카라 속에는 그 슬픔 사이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아기가 있습니다. 슬픔에 잠긴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흔들며 아기는 다시 말합니다. "맘마."
그 장면에서 겨우 누르고 있던 감정이 터져 나왔습니다. 목젖이 뜨거워지며 "크헉" 소리를 내며 훌쩍이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엄마에서 엄마로, 다시 엄마로 연결되고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엄마."
우리들의 별이고 우주인 아버지
<나의 아버지> 표지는 아버지 안에 작은 아이가 들어 있습니다. 글자 속에는 별과 우주가 들어있습니다.
아버지는 별이었고 우주입니다. 인식을 시작하는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존재의 크기를 깨닫게 되는 특별한 분.
아버지는 참으로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세상에 모르는 게 없고, 언제나 뒤에 서서 한결같이 응원해 주던 단 한 사람. 내 등을 따뜻하게 밀어주고 어깨를 펴게 해주던 나의 가장 든든한 '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든든하던 벽이 어느새 늙고 허름해졌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신만만했던 세상 만능 엔터테이너 같던 그분이 언제 이렇게 기운이 빠지신 걸까요. 바카라 속의 아버지는 이제 자신의 아들을 다시 '아들의 아들'에게 담담히 건네줍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걸어간 위대하고도 숙연한 길입니다.
나의 엄마
오늘 아침 딸이 건넨 그림바카라은 그 어떤 비싼 선물보다 촉촉한 감동이었습니다. "고맙다, 딸아. 엄마가 할머니를 생각하듯 너도 이 엄마를 생각한다는 뜻이지? 다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 그곳에서도 좋아하시던 담배는 즐기고 계시는지요. 멍게 철이 돌아오면 유독 아버지 생각이 간절합니다. 이세상에 잠행이라도 한 번 나오실 법한데 소식이 없으시네요. 그리운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된 삶을 사시면서도 저희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서둘러 발걸음을 옮깁니다.
"엄마, 막내딸 지금 가요. 곧 뵈어요."
[참고] 어버이날의 의미와 되새겨보는 '어머니의 마음'
우리가 매년 맞이하는 5월 8일 어버이날은 본래 1956년 '어머니날'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아버지의 날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1973년 지금의 '어버이날'로 지정되었지요. 산업화와 핵가족화 속에서 퇴색해가는 효 사상을 되살리자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어버이의 사랑을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곡이 바로 양주동 박사 작시, 이흥렬 교수 작곡의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이 노래를 작곡한 이흥렬 교수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일본 유학 시절, 피아노가 없어 공부를 포기하려던 아들을 위해 그의 어머니는 산을 뒤져 솔방울을 긁어 모아 팔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거금 400원으로 아들에게 피아노를 사주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이 거룩한 노래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자신의 위대한 스승으로 주저 없이 어머니를 꼽았고, 레이건 대통령 역시 슬롯를 지탱하는 힘은 어머니의 사랑이라 말했습니다. 신을 대신하여 우리 곁에 온 존재, 어머니.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고 표현합시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그 한마디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네이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