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도 끝내주는 날이 올거야" 3%가 만든 기적

[리뷰] 김애란 시집, <학교에서 기적을 만났습니다>를 읽고

by미야

세상이 아무리 모질고 벼랑 끝 같아도, 내 손을 쥐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사람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김애란 시인의 시집 <학교에서 기적을 만났습니다>를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입니다. 그 든든한 구원의 존재는 부모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조차 온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할 때, 그 자리를 묵묵히 채워주는 학교 선생님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참스승'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평생을 교단에 서며 아이들과 함께 호흡했던 퇴직 교사인 저에게 이 시집은 유독 마음을 아리게도, 또 따뜻하게도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한때는 참스승이 되고 싶어 부단히도 노력했었습니다. 하지만 바카라장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게 됩니다. '나는 과연 아이들이 가장 위태롭고 외로웠던 순간, 딱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준 단 한 사람이었을까?' 참스승의 모습이고 싶었으나 온전히 그러지 못했던 것만 같은 아쉬움과 미안함이 일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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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표지바카라표지


담담해서 더 아픈 고시원 고딩의 하루, 그리고 '톡쟁이' 담임


이 시집의 매력은 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 하듯 툭 던지는 담백함에 있습니다. 아이들의 날 것 그대로의 언어와 시선으로 시를 쓰니, 대놓고 내 아픔을 징징거리며 쓰는 글보다 훨씬 객관화되어 독자에게 편안하면서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사고 친 날에 어김없이
톡을 날리는 담임 때문에
우주 미아 되기도 쉬운 게 아니다
- '쉬운 일이 없다' 일부


빚 때문에 온 가족이 시골로 떠나고, 홀로 고시원에 남겨진 고등학생의 삶은 비좁고 적막합니다. 풍경이 아름다워서 슬프고, 아름다울 것이 없어서 적막한 방에서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추억을 버리고 미래를 줄이는 '고시원 다이어트'를 감행합니다.



아무리 내 생이 비좁다 해도
희망만은 버릴 수 없다
- '고시원 다이어트' 일부


다 추려서 버려도 희망 하나만은 남겨두어야 살아낼 수 있는 법입니다. 이 아이에게 희망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담임의 카톡, 그리고 저녁으로 넌지시 배달시켜주는 따끈따끈한 군만두와 짜장면 한 그릇. 그것이 아이의 등을 토닥이는 거대한 위로이자 살아갈 이유가 됩니다.



창문도 없어 첫눈이 오는지도 모르는 고시원 방에 앉아있을 때, 담임에게서 또 톡이 옵니다. "1층 냉장고에 밑반찬 좀 넣어 놨어. 눈 온다. 너한테도 끝내주는 날이 올 거야." 옥상에 올라가 손나발을 하고 "쌤..." 하고 불러보는 아이의 마음에 눈이 내리고, 제 마음에도 비가 내립니다. 사랑도 참 시크하고 멋지게 하는 담임입니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시집 속 아이들은 담임과의 교감을 통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엽니다. 힘들다는 말 대신 "구름이 아름다워요, 쌤" 하고 먼저 톡을 보내도, 담임은 그 속에 숨겨진 아이의 고단함을 단박에 알아챈다. 굳이 이심전심이라는 통념적인 말로 그들의 깊은 연결을 깨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짜 관심이고 사랑입니다.



현장실습의 모진 노동을 견디다 못해 "실습 쫑냈어요, 쌤" 하고 불안하게 보내온 톡에 담임은 단 두 글자로 답합니다. "잘했어."



퍽퍽
누나 등 때리며 울던 엄마
학교도 내 등 때리며 울까?
끝내 안아 주던 엄마처럼
꼭 끌어안아줄까?
역시 담임은 내 편이다
- '잘했어' 일부


아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세상"이고, 담임쌤이 되고 싶은 사람은 "너희들이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 짧은 문답 속에 교육의 본질이, 인간에 대한 품격이 담겨 있습니다.



쓰다 보니 어느새 모든 게 기적이 되었다



시집의 절정은 표제작이 있는 제4부입니다. 초특급 말썽을 피운 날, 담임은 아이에게 백지를 내밀며 '내 인생의 기적'을 찾아 쓰라고 합니다. 밑바닥 인생에 무슨 기적이 있겠냐며 얼굴이 굳어진 아이에게 담임은 말없이 목도리를 벗어 둘러줍니다. 목이 따뜻해지는 순간, 아이는 깨닫습니다. '내가 이 선생님을 만난 게 기적이구나.'



교통사고로 누워 혼자 힘으로 걷지도, 똥을 누지도 못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는 백지를 채워나갑니다. 내가 걷고 뛰고, 밥 먹고 오줌 누고, 가방 메고 핸드폰하고, 그리운 엄마가 있는 것. 쓰다 보니 어느새 모든 게 다 기적이 됩니다.



찾아 놓고도 몰라봤다
어쩌면 내 꿈도 이런 건 아닐까
벌써 찾아 놓고도 몰라보는-
- '숨은 그림 찾기' 일부


우리는 어쩌면 이미 곁에 와 있는 기적을, 내 손에 쥐어진 꿈을 몰라보고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장정희 평론가의 해설처럼, 이 한 권의 시집은 그 자체로 '기적 찾기'입니다. "쓰다 보니 어느새 모든 게 기적이 된" 것처럼, 읽다 보니 어느새 내 삶의 모든 평범한 순간들이 기적으로 다가옵니다. '난 할 수 없어'가 '난 잘할 수 있어'로 바뀌는 그 설레는 경험을 선물해 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직 '3%의 관심'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3%의 소금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집 속 한 구절 '바다라 생각해 주세요'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관심도 그리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단 3%면 충분합니다.



시집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는 삭막한 세상의 벽을 향해 이 따뜻한 온기를 힘껏 밀어 올리고 싶어졌습니다. 거창한 제도나 거대한 물질이 아이들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벼랑 끝에 선 아이에게 "너한테도 끝내주는 날이 올 거야"라고 말해주는 단 한 사람의 3%의 관심, 그것만 있으면 아이들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 3%의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에게 단 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이 척박한 세상도 거대한 바다처럼 푸르게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 이제 우리 모두 주변을 둘러보고, 누군가에게 그 따뜻한 3%가 되어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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