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것이 전부일까

샘플링 이론으로 사람을 보는 법

by할롬

고등학생 아들을 4년 동안 꽤 많이 보았다.

아침에 보면 겨우 일어나 허둥지둥 학교에 간다. 다음에 보면 밥 한 솥을 거의 혼자 다 퍼먹고 있다. 또 보면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한다. 그 다음에는 그 게임을 하는 다른 사람의 유튜브를 보고 있다. 학교에서는 테니스에 미쳐서 집에 올 생각을 안하기도 하고 난데없이 레슬링 팀에 들어가기도 했다.


고등학교 과정 4년 동안 수도 없이 보았는데, 나는 이 아이가 바카라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 한국식 교육에 익숙한 내 눈에는 공부하지 않는 고등학생이라는 게 영 낯설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그런 모습도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졸업을 앞두고 마침내 내가 말했다.

“내가 4년 동안 충분히 샘플링하고 내린 결론이야. 너는 공부를 한 번도 안 하고 고등학교를 마쳤어.”

아들은 억울해했다.

“내가 공부할 때는 엄마가 안 보고, 놀 때만 본 거잖아. 그건 샘플링 에러예요.”

우리 집에서는 가끔 이런 식으로 공학 용어를 장난처럼 쓴다. 나는 웃었지만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한두 달이라면 몰라도 4년이다. 수백 번, 어쩌면 수천 번을 보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생겼다.

많이 보았다는 것과 제대로 보았다는 것은 같은 말일까.


공학에서는 계속 변하는 신호를 매 순간 모두 측정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일정한 순간마다 값을 하나씩 뽑아 본다. 이것을 샘플링이라고 한다.


문제는 어디에서, 얼마나 자주 값을 뽑느냐다. 샘플을 잘못 뽑으면 실제 신호와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영화에서 앞으로 달리는 자동차 바퀴가 어느 순간 뒤로 도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바퀴가 정말 방향을 바꾼 것은 아니다. 카메라가 연속된 움직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간격으로 장면을 잡아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실제는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는 띄엄띄엄 몇 장면만 본다. 사람을 볼 때도 다르지 않다.


말수가 적은 사람을 몇 번 만나고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한 장면을 보고 저 부모는 늘 저렇겠거니 한다. 몇 번의 실수를 보고 무바카라임한 사람이라고 결론 내리기도 한다. 우리가 본 장면이 거짓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몇 개의 점 사이를 우리가 마음대로 이어버린다는 데 있다.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꽤 대담한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삶에서 몇 점밖에 보지 못했으면서 전체 곡선을 안다고 믿는 것이니까.


가까운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온라인 게임 동료는 주로 일하는 모습으로 알고, 학생은 교실에서의 모습으로 안다. 이웃은 잠깐 마주쳐 인사하는 모습으로 기억한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도 늘 비슷한 장소와 역할 속에서만 만났다면, 샘플의 수만 많아졌을 뿐 관찰의 조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사람을 오래 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내 앞에서 보여준 한 가지 모습을 오래 본 것인지도 모른다.


아들은 아직도 주장한다. “그러니까 엄마 샘플링이 잘못된 거라니까.”


그럴 수 있다. 내가 본 것은 아이가 집에서 쉴 때뿐이었을 수도 있다. 샘플의 수는 많아져도 샘플링하는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부분은 계속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다. 4년 동안 같이 살면서 단 한 번도 공부하는 모습을 못 봤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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